산업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기업 부담만 늘린다”는 업계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은 정부 원안에 비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위험한 작업도 일부 도급이 가능케 하고, 위반 시 처벌 수위를 약간 낮춘 정도다.

위험한 작업의 사내 도급과 하도급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원청업체의 책임 범위가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위험한 작업을 원청업체가 직접 할 경우 전문성이 떨어져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하소연은 끝내 외면했다. 고용부 장관이 승인할 경우 제한적으로 전문업체에 도급이 가능하다지만 기준이 모호해서 승인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결국 원청업체와 사업주의 부담과 책임은 무한대로 커지고 산업안전은 담보하지 못하는 ‘이상한’ 법이 돼버렸다.

이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여야 정치권이 법안 내용과 파장에 대해서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여론과 정치적 필요에 의해 얼렁뚱땅 합의해 버렸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이 분노한다”며 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당초 “산업재해 책임을 전부 사업주에게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과 산안법 처리를 맞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2, 제3의 김용균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해 연내 법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조 수석의 국회 출석을 지시했다.

여야 모두 법안 내용을 제대로 짚어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씨 사고 후 불과 2주 만에 법안이 통과됐고 그나마 심의기간은 나흘에 불과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속전속결’로 법안을 처리해 김씨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감성 정치’가 필요했던 여당과 청와대 민간사찰에 대한 정치공세가 필요했던 야당 간 정치적 거래의 결과가 산안법 졸속 처리다.

‘국민의 분노’를 내세우며 마구잡이식으로 만들어지는 ‘기업 억압법’은 산안법뿐이 아니다.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안 등이 줄줄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경제는 점점 고꾸라지는데 기업 손발은 점점 더 묶여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