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더스] 국내 첫 영리병원… 의료 공공성 해칠까
이르면 새해 1월 국내 첫 영리병원이 제주도에서 문을 연다. 제주도는 지난 12월 초 지역경제 살리기와 관광산업 재도약 등을 이유로 중국 국유 부동산 개발업체 녹지그룹이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에 지은 녹지국제병원의 개원을 허가했다.
약 778억 원이 투입된 녹지병원은 연면적 1만8천253㎡(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2017년 7월 완공됐으며, 의료진 58명을 비롯해 134명이 채용된 상태다.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에 한해 외국인 의료관광객에게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의 적용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의료법에 따르면 영리법인은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고 의사나 정부, 지방자치단체, 학교법인, 사회복지재단, 의료법인 등만 비영리로 세울 수 있다. 이에 따라 민간 병원도 수익이 나면 인건비나 설비 투자, 연구비 등으로만 이를 쓸 수 있다. 또 모든 국내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제도 등을 통해 정부의 의료비 통제도 받는다.

영리병원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전국의 경제자유구역 8곳과 제주도에 한해 설립이 허용됐는데, 기업이나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운영하며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영리병원의 토대는 2002년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처음 마련됐다. 제주도의 경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외국인과 외국법인에 한해 영리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주특별법이 제정되며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그 후 2008년 영리병원 도입 움직임이 있었으나 여론의 반대로 무산됐고,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녹지그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영리병원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후 3년 만에 최종 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보다 두 달 앞선 지난 10월, '영리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제주도민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영리병원 개설에 대해 '불허'를 권고했음에도 제주도가 허가를 내주자 여론이 좋지 않다.

특히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한다. 의료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영리병원의 특성상 환자의 이익보다 경제성에 얽매이기 쉬워 돈이 되는 진료나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의료 영리화 시발점이 될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반대한다"며 "외국 자본으로 설립한 의료기관인 만큼 환자의 건강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춰 국내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내국인 진료 여부도 쟁점이다. 예를 들어 녹지병원에 내원한 내국인 응급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사망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의료진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의료법 제15조가 이를 뒷받침한다.

일단 조건부로 개원한 후 경영이 악화되면 진료 대상이나 영역 확대를 요청할 가능성도 크다. 녹지병원만 해도 허가를 받은 지 불과 하루 만에 조건부 허가에 불만을 드러내며 법정 다툼이 예고됐다. 2015년에는 복지부가 내국인 진료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외국인으로 제한한 것은 근거가 없다는 게 녹지병원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제주특별법 등에 따르면 '외국 의료기관과 외국인 전용 약국에 대해 이 법에 정하지 않은 사항은 의료법과 약사법을 준용한다'고만 돼 있어 뚜렷한 사유 없이는 내국인 진료를 막기 힘들다는 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인천과 부산 등에서 수년째 추진돼온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에도 다시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는 부정적 여론에 떠밀려 진전되지 못했지만 녹지병원을 도화선으로 삼아 영리병원이 곳곳에 들어설 것이란 우려가 확산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