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의 데스크 시각] 임금체계 개편, 기업이 알아서 하라니…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세밑까지 나라를 갈등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일하지 않은 시간’(주휴시간)을 근무시간에 반영하려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이 겹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연봉 6000만원짜리 근로자의 최저임금 미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고용노동부는 6개월 시간을 줄 테니(처벌 유예) 기업들이 알아서 임금체계를 개편하라고 했다. 기본급을 올려주기 싫으면 두 달에 한 번 주는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는 쪽으로 바꿔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라는 식이다.

기업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임금체계를 고치려 해도 노조가 받아줄 리 만무해서다. 기업들은 대부분 상여금 지급 주기를 단체협약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주기를 바꾸려면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주휴수당이라는 시한폭탄에 쫓기는 기업은 급한데, 노조는 느긋하다.

임금체계 개편 막는 강성노조

일부 저연차 직원의 임금이 최저임금에 미달해 고용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현대모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두 달(짝수달)에 한 번씩 100% 주던 상여금을 50%로 나눠 매달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노조는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생산직 직원에게 짝수달마다 100%씩 지급하는 상여금을 12개월로 나눠 지급하려고 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미봉하는 데 그쳤다. 이 회사 노사는 최근 상여금 300%는 매달, 나머지는 기존 방식대로 주기로 합의했다. 일단 내년 최저임금 미달은 피했으나, 최저임금이 또 급격하게 오르면 문제가 된다.

“임금체계 개편을 노사 자율에 맡겨서는 6개월이 아니라 6년, 60년이 걸려도 못할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국내 기업들이 수당 종류만 150여 개에 달하는 기형적인 임금 구조를 갖게 된 데는 노사 외에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는 1987년 ‘6·29 선언’ 이후 기본급 위주인 한 자릿수 임금 가이드라인 정책을 추진했다. 힘이 크게 세진 노조의 요구를 묵살하기 어려웠던 기업들은 각종 수당을 신설, 편법적인 임금 인상을 했다. 정부가 1992년 총액임금제(고정적인 급여 기준으로 임금인상률 결정)를 도입하자 기업들은 성과배분제도를 활용해 수당을 늘렸다. 총액임금에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등 성과적 상여금 및 특별상여금은 빠진다.

주휴시간은 '최저임금'서 빼야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이 임박하자 소상공인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들이 가장 절박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연합회 소속 전국 광역회장단 등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 환경과 국제 기준에 맞게 주휴수당을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기준법에 주휴일(법정 유급휴일)이 도입된 때는 1953년이다. 당시엔 근로자들이 전후(戰後) 경제 재건을 위해 주 6일,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 일요일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최저생계비를 벌기 어려운 근로자가 많아 주휴수당을 지급토록 했다. 주 5일,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시대에 주휴수당 유지는 불합리하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최저임금은 ‘실제 받는 임금’을 ‘실제 일하는 시간’으로 나눠 계산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다. ‘주휴수당에 관계된 근로시간은 최저임금 월 환산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따르면 그만인데, 정부가 앞장서 논란과 갈등을 키우는 모양새다. 정부는 31일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을 강행할 방침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이지만,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1만30원으로 상당수 기업이 버티기 힘든 수준이라는 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내년이 정말 두렵다”는 기업들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