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이젠 '수출 1조달러 시대' 향해 뛰어야
한국 무역사에서 1977년은 기념비적인 해였다. 사상 최초 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기념하는 초대형 아치가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질 정도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은 외신들의 뉴스거리이기도 했다. 그해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한국인이 몰려온다(The Koreans are coming)’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한국인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공업구조를 갖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일본인을 게으른 사람으로 보는 유일한 국민”이라고 언급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때의 한국인 후손들이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 수출 6000억달러를 달성한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6000억달러 고지를 밟은 나라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여섯 나라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로는 우리가 유일하고, 국토 면적 107위, 인구 27위에 불과한 나라가 거둔 성과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취업난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이런 자랑스러운 성과에 국민 모두 큰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은 규모와 내용 모든 면에서 성과가 크다. 무역 규모는 역대 최단기간에 1조달러를 돌파했고 사상 최대인 1조1000억달러 달성이 전망된다. 미·중 무역 갈등, 보호무역 확산 등 어려운 여건을 뚫고 거둔 실적이라 더욱 값지다. 내용 면에서는 반도체, 일반기계, 석유화학 수출이 역대 최고 실적을 세웠고 바이오헬스, 전기자동차, 신소재 등 신산업 수출도 전년보다 12% 늘었다. 또 유망 소비재 중에서 화장품은 7년 연속, 의약품은 5년 연속 수출이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수출의 외연이 확대된 것도 고무적이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인도 등 신(新)남방 지역으로의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아세안은 우리의 2위 교역 대상이고 베트남은 3위 수출국이자 2위 해외 건설 시장이 됐다. 또 러시아 등 신북방 국가 수출도 올해 10% 이상 늘었다. 정부의 신남방·신북방 정책에 발맞춰 우리 기업들이 신흥 유망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어 뜻깊다.

그러나 우리 수출이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문제도 여전히 많다. 수출 1조달러 시대를 열려면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질적 고도화를 병행해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출 품목 및 시장 다변화가 중요하다. 반도체 등 일부 주력 품목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으므로 첨단 신산업(로봇, 항공·우주, 에너지신산업 등) 유망 소비재(패션의류, 생활·유아용품, 의약품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물류, 금융 등) 분야로 수출 품목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미·중 의존도가 37%에 달해 보호무역 등 통상환경 변화에 타격을 받기 쉬우므로 신남방·신북방 지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 시장을 넓혀야 한다.

또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 수출 구조 탓에 수출이 늘어도 소득과 고용 등의 낙수효과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효과가 높은 중소·중견기업이 더 많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도록 내수 기업을 수출 기업으로 키우고, 강소·중견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처럼 수출의 체질을 개선해야 무역이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내년도 글로벌 무역환경 전망은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다.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와 보호무역 확산 등으로 우리 수출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돌아보면 어느 한 해도 호락호락한 적은 없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무역강국’이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다시 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