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과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증시 진단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새해 주식 시장 향방은…두 전문가와의 방담
'증권업 33년' 관록의 김한진
韓 저평가에도 내년 반등 어려워
'올해 첫 센터장' 신예 김형렬
외국인 셀코리아?…비중감소 미미
'증권업 33년' 관록의 김한진
韓 저평가에도 내년 반등 어려워
'올해 첫 센터장' 신예 김형렬
외국인 셀코리아?…비중감소 미미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교보증권 15층 회의실에서 33년 간 시장을 분석해온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과 올해 5월 처음 센터장이 된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그리고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들이 모여 앉았다. 미국 S&P500지수가 나흘간 8% 가까이 떨어지고,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하루 만에 5% 급락한 다음 날이었다.
‘관록’과 ‘패기’가 맞붙은 이 날 방담에서 두 전문가의 내년 증시 전망은 크게 엇갈렸다. 김 연구위원은 “내년 코스피지수에 대한 KTB투자증권 공식 견해는 2000~2500이지만 개인적으론 많이 양보해도 2000선을 중심으로 한 박스권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기 사이클이 바닥을 찍기 전까지 반등이 쉽지 않다는 시각이다. 반면 김 센터장은 “10년 사이 한국 기업의 기초체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내년 코스피 평균은 2300 전후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전문입니다.
◇김형렬=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한진=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지난해에 올해 전망을 내놓을 당시 조정장을 예상했습니까.
(김형렬) “올해 저희 하우스가 내세운 타이틀은 ‘버블 3.0’ 이었습니다. 경기 확장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에 비해 자산시장에 형성된 버블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 등을 거론했습니다. 즉 시장이 저평가되고 매력을 잃어갈 것으로 봤습니다. 당시 저희가 상대적으로 보수적 의견을 냈는데, 지금은 반대로 시장을 가장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하우스가 됐습니다.”
▶하락폭이 이 정도일 것으로 보셨나요.
(김형렬) “급락할 것으로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에 1980년대 ‘블랙 먼데이’ 사태와 비교하는 보고서를 내긴 했지만 증시를 보수적으로 봤던 이유는 주식보다 채권의 투자 매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이나 20년 전 겪었던 시스템 리스크나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제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간 장기 호황이 이어졌던 만큼 부담을 느낀 게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죠.
문제는 최근 10년 사이에 나타난 변화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양극화인데, 경제 호황으로 소득이 크게 늘었는데도 주변을 보면 흥청망청 돈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과소비나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 선행소비 행태가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서 발생하는 위기나 후퇴 과정이 투자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물론 많이 불편할 수 있겠지만 미래 소득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김한진) “2018년은 경기 측면에서 불확실성과 악재에 민감한 시기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글로벌 경기 사이클입니다. 올 초에 경기가 꺾이는 초기 단계인 ‘레이트 사이클(경기 확장 후반부)’에 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레이트 사이클에서는 보통 불확실성이 큰데 이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봤습니다.
유동성 측면에서는 경기가 이미 꺾였음에도 미국 연준이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데드 크로스’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달러가 강세를 띨 가능성이 있어 신흥국 시장으로 돈이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전반적으로 2018년은 고생스러운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죠.
돌이켜 보면 당시 예상은 맞았지만 실제로는 더 나빴습니다. 1년 전의 내년과 2020년 전망보다 지금의 내년과 2020년 전망이 더 부정적입니니다. 시장을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낙관적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전망치의 하락세가 중단되면 경기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시장이 안정될 텐데, 지금은 안정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 같습니다.”
(김형렬) “박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올해 예측 중 제가 틀린 것이 있다면 환율입니다. 올해 글로벌 경제는 확장구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신흥통화나 달러를 제외한 통화의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봤는데 예상보다 달러가 강세였지요. 달러 강세를 자극한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감세안 등 정책이었습니다. 반면 미·중 무역부쟁 이슈가 불거져 위안화 약세는 예상보다 심했지요. 다만 흥미로웠던 건 달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따라갔고, 위안화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정치적 위상과 힘의 크기에 비례했다는 겁니다.”
▶증시 조정이 예상보다 일찍 왔다고 보십니까.
(김형렬) “올 초에 보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지수(MSCI World Index)가 지난해에 월간 수익률 기준으로 한 번도 마이너스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역대 처음입니다. 일종의 쏠림현상이 심화됐다는 걸 지적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우려를 희석시킨 건 올해 경제 전망이 나쁘지 않았다는 겁니다. 2017년 경제가 나쁘지 않았고 호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가 강했기 때문에, 쏠림 현상을 지적했을 때도 오히려 시장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본다는 말을 들었죠.”
▶상반기에 상승하고 하반기에 떨어지는 ‘상고하저’일 거라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2월부터 점진적인 조정이 왔는데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처럼 급격한 조정이 아닌, 이런 조정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까.
(김한진) “말씀하신 것처럼 조정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나 시스템 문제로 충격을 받아 단기간에 시장이 급락하는 형태입니다. 그 예로 2004년에 조선주가 급락할 때 현대중공업 주가가 60만원대에서 반토막 수준인 30만원대로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한 달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경기 사이클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이른바 ‘정상적인 조정’입니다. 거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이 가치를 찾아가는 조정으로 최근 장이 이런 유형입니다.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그간의 주가 상승 요인인 경기와 유동성이 약해지며,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크지 않은 데도 조정이 오는 거죠. 이 경우 장은 ‘L자’ 형태를 보이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박스권에 갇히게 됩니다.
다만 이번 조정이 지난 2월과 6월, 10월 총 세 번 떨어진 것이 특이한 점인데 이는 그간의 통화팽창으로 과거와 달리 유동성의 변화가 시장에 충격을 주는 정도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산시장이 세계적으로 동조화되며 환율 변화가 신흥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신흥국은 경기가 1만큼 약해져도 자산가격이 2만큼 떨어지는 등 실물시장보다 자산시장의 민감도가 높아졌죠. 최근 10년간 유동성이 풀리며 통화가 10년 전에 비해 4배 가량 늘어났는데, 상당량이 자산시장에 돌고 있는 만큼 글로벌 자산시장이 금융 상태에 민감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가 하락하면 유동성이 영향을 받고 자산가치가 떨어지며 다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역자산 효과’도 커졌습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유동성이 풀리며 발생한 현상인데, 사람들이 유동성 환경이 자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예측 오류가 나는 거지요.”
(김형렬) “올해 조정은 2011년의 조정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번 조정은 리플레이션(점진적 물가 상승)의 끝자락에서 통화정책의 변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줬습니다. 2011년 8월도 그랬습니다. 양적완화를 재개하고 선진국의 중앙은행 간 정책기조가 강화돼 저금리를 바탕으로 경기 여건 자체는 좋아졌고, 주식시장은 경제에 대한 기대를 선반영했습니다. 하지만 실물 시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요. 우리나라는 좋았지만 선진국은 회복 정도가 느렸죠.
그러다 ‘출구 전략’ 논의가 나오자 우려가 생겼습니다. 출구 전략이라는 정책 기조의 변화는 금리 환경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정부 부채 문제 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며 정부 부채에 대한 문제의식이 시장에 생겼고 이는 미국보다 유럽 등 재정이 불량한 나라들로 퍼졌습니다. 당시 미국 증시가 한 달에 11% 빠졌지만 우리 주식은 지난 10월처럼 21% 빠져 2150선에 있던 코스피가 1700선 밑으로 내려갔죠.
당시는 금융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단기 리플레이션의 끝자락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신 지금은 경기가 좋아졌죠.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나고 고용과 실질 생산이 좋아진 상태에서 선진국이 앞으로 닥칠 경기 둔화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기적 관점의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올해 연준이 금리를 네 번 인상할 거라고 했을 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제로 연준은 단행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주식시장에 먼저 조정을 준 겁니다.
2011년 당시 그리스 문제 등 정부 부채에 대한 지적이 나왔고, 실제 취약성을 확인하고 어려움이 커지면서 시장 정체가 오래 이어졌습니다. 내년 상반기부터 경제주체인 가계와 정부, 기업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텐데 저는 정부 재정 쪽에서 문제가 드러날 여지가 크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셧다운 사태 등 문제는 이미 불거지고 있죠. 이런 문제를 예전 방식으로 수습할 것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올해 증시 향방이 달려있다고 봅니다.”
▶과거 위기상황에서는 국가 지도자들의 빠른 결단으로 정책적인 공조가 이뤄졌고, 이후 시장도 조정을 벗어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 조정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갈 거라고 보시나요?
(김한진) “저는 트럼프 대통령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닷컴 버블 때 형성된 미국의 4차 산업혁명 생태계가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를 기반으로 꽃피우며 최근 10년간 경기가 좋았어요.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던 벤 버냉키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통화를 찍어 시장에 푸는 ‘헬리콥터 머니’로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경기를 부양하고 자산시장을 키웠습니다. 다만 모든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첫 번째로 미국의 납세자들이 통화팽창의 비용을 지불했고, 두 번째로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골고루 분담했다고 봐야 하지요. 당시 돈을 풀지 않았다면 신흥국들이 낮은 금리로 달러를 차입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지금은 양적완화의 연장선상에서 신흥국이 값싼 달러를 대거 차입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분쟁 정책도 30~40년간 이어져 온 국제 무역질서의 한계를 표출하는 ‘트리거(방아쇠)’ 역할일 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어도 무역분쟁은 결국 생겨났을 겁니다. 역사적으로 무역분쟁이 있을 만한 상황, 중국의 패권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라는 인물을 미국이 선택한 거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군요.
(김한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급진적이고 트럼프 대통령 자체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형성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산시장 위기의 본질은 아닙니다. 내년 2월말께 무역분쟁이 해결된다고 해도 큰 경기 사이클이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불확실성은 다소 제거되겠지만 관세율을 기존에 공표했던 것보다 낮추는 정도일 것이고 전세계 경기 사이클이 바뀔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국내 증시로 주제를 돌려봅시다. 한국이 잘 버티고 있다고 보십니까.
(김형렬) “그렇습니다. 주가수익률을 봤을 때 내년에 대한 우려는 올해 장에 대부분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기대보다는 덜하지만 우리 경제는 성장했고 상장사들의 이익도 늘어났는데 주가가 후퇴했다는 건 내년의 우려를 반영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하지요. 문제는 내년에 실제로 더 안 좋아질지 여부인데, 우리 기업들이 지난 10년간 펀더멘털(기초체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온 만큼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1월 전망 보고서에서 ‘미디어콘드리아(미디어가 주는 정보를 스스로 해석해 질환을 자가진단하는 등 미디어를 의사보다 신뢰)’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 사안에 대해 과거와 달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어서 시장을 전망하는데, 요즘 희망적인 내용보다는 보수적인 내용들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려가 과하게 반영됐다고 보고 있고 올해 너무 비관적으로 출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장이 버티는 이유는 한국 장이 이미 조정을 받았고, 연말 기관의 순매수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인가요?
(김형렬)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 자금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흔히 증시 하락의 이유를 외국인의 ‘셀코리아’라고 하는데, 외인 시가총액은 지분율로 보면 올 초 대비 0.7% 정도 줄었습니다. 전체 시총이 15% 감소한 걸 고려할 때 엄밀히 말하면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습니다. 규모만 보고 외인이 7조원어치 팔았으니 셀 코리아라고 하면 개인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입니다. 오히려 국내 증시가 부진하고 대외 충격에 쉽게 무너지는 건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에 관심을 안 두기 때문입니다. 최근 은행과 증권사의 주력 상품을 보면 대부분 미국 주식 등 해외 투자 관련입니다.
현재 국내 부동자금이 1500조원을 넘습니다. 부동자금은 잠깐의 자산가치 변동만 생겨도 이동할 준비가 돼 있는 돈이죠. 2017년에 주식이 뜨니 올 초 거래대금이 급등한 게 그 예고요. 그런데 올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대상은 부동산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이 부동산으로 몰려가는데 주식이 저평가됐다고 해도 귀에 들어올 리 없죠.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진 건 맞지만 올해 주가가 하락한 주요 원인은 증시의 매력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이익 증가율을 빼고 국내 증시에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한 거지요.
경제와 금융을 비교해 시장이 저평가됐는지 평가하는 ‘워렌 버핏 지표’가 있습니다. 올해 예상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700조원 중반대였습니다. 연초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이 1700조원 이상으로 저평가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그 이상 가려면 프리미엄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선진국 경제이든가 배당이 높아야 합니다. 한국은 두 가지 다 충족하지 못해 지수가 떨어졌죠. 현재는 시총 1300조원 수준으로 저평가 매력이 생긴 대신 허들(장애물)을 갖게 됐습니다. 다른 선진국 증시처럼 장이 중장기적으로 오르기엔 한계가 있는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죠.”
▶내년 글로벌 증시 전망은 어떻습니까.
(김한진) “이코노미스트의 관점에서 현재 전 세계 증시는 전형적인 역실적 장세(기업 실적이 안 좋아져 시장이 하락하는 장)입니다. 내년에는 전반적으로 주가가 악재에 민감하고 호재에 둔감할 겁니다. 경기가 하락하고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그동안 좋았던 경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일 수 있습니다. 지난 6~7년간 선진국 경기가 좋았고 앞서 말했듯 경기 확장기에 시장은 이미 재평가됐기 때문에, 이제는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지는 디레이팅(de-rating)이 생길 수 있어요. 경기가 1만큼 안 좋아지면 주가가 0.5만큼 빠져야 하는데 지금 시장은 더 민감한 상태입니다. 경기 다운사이클 우려와 이미 이뤄진 통화 정책이 증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연준이 금리인상을 내년 중반에 멈춘다고 해도 이미 올린 금리가 유동성 환경을 지배할 거라고 봅니다.”
▶자영업자 붕괴, 최저임금 인상 등 한국에는 특수한 요인들도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한진) “경기 측면에서는 더 안 좋습니다. 최근 경기 사이클의 특징은 미국과 유로존 등 선진국과 신흥국 경기의 차별화가 커진다는 점입니다. 주가뿐 아니라 실물경기의 차이도 전에 없던 수준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경기는 양적 성장하며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과제를 안고 있고, 미국은 통화팽창의 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신흥국 시장은 그런 요인이 없습니다.
또 최근 10년간 전 세계 경기의 특징은 혁신성장 기업들이 주축이 됐다는 점입니다. 나스닥시장 영업이익의 20%가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외 10개사에서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기업이 존재해야 경기와 증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최근 미국 경기 호황의 수혜를 누렸습니다. 과거에는 미국 경기가 좋으면 중국 경기도 살아났고 산업재, 자동차 등 전통 산업도 살아났지만 이제는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정보기술(IT), 반도체 및 통신장비 수입은 늘었지만 전체적인 소비재 수입은 정체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신흥국으로 부가 흘러가는 낙수 효과가 약해지며 선진국과 신흥국 경기가 차별화된 겁니다. 대표적인 디커플링(탈동조화) 국가가 중국이고, 중국에 연동된 한국 경제도 반도체를 제외하면 수출이 정체 상태입니다. 중국도 수출이 정체되며 외환보유고가 줄고 경기가 둔화되는 거지요. 재고가 쌓일 테고 디레버리징 압박은 더 세질 겁니다.
한국의 경우 경기 성장의 상당 부분을 건설 부문이 차지하는 사회간접투자(SOC) 예산이 줄었고 민간 건설 경기는 둔화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성장 트랩’에 빠지는 겁니다. 게다가 정책 구심점도 약하고 산업정책도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경제는 선진국은 물론 다른 신흥국보다도 경기 성장 모멘텀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경기를 증시의 주요 요인으로 보신다면 김 센터장과 다소 다른 전망인 듯합니다.
(김한진) “경기 하강기에 기업 이익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런 일은 드물지요. 주가는 경기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센터장님 예측이 맞을 수 있습니다. 경기 사이클이 바닥을 딛고 불확실성이 보이지 않고, 시장이 이를 반영한다면 주가는 경기 사이클에 앞서 반등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2020년~2021년에 좋아진다고 해도 주가는 내년에 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 주가가 지금 많이 빠졌다는 것도 동의하고요. 현재 국고채 금리 대비 주가수익비율(PER)가 8~9배 수준인데, 조금 더 떨어지면 안전자산보다 주식을 사는 게 이익일 수 있습니다. 배당수익률만 해도 2~3% 이상인 종목들이 많고요. 대체자산보다 주식이 싼 상태인 건 동의합니다.
또한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외국인 매수세의 트리거인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내년에 해소되면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공격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한국 시장이 많이 떨어진 데다 환율 측면에서 선진국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 환율이 15%가량 절하됐는데 원화는 5% 떨어졌습니다. 유로화 수준으로 외환 펀더멘털이 매우 튼튼합니다. 다만 경기도 튼튼했다면 환율과 맞물려 우리 증시가 선진국에 연동됐을 텐데 경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연동된 거지요.
중국 경착륙 우려가 해소되면 외인은 한국 주식을 사지 말라고 해도 살 겁니다. 달러가 계속 강세일 순 없고 신흥국 통화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는 시기도 결국 올 테니까요. 중국의 경착륙 및 디레버리징 불확실성이 해소된 후 그 시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준의 마지막 인상기에 전세계 경기가 꺾이면서 달러가 쉽게 초약세로 가기는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금리 인상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최근 파월 의장 해임 논란도 나왔는데요.
(김형렬) “파월 의장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을 해왔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목소리가 얽히며 논란이 되긴 했지만 성향 자체는 전임 의장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Fed 총재로서 정책으로 현재 경기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건 의무이자 권한이라는 시각에서 봤을 때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봅니다.”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건 내년 전망인 것 같습니다. 예상 코스피 밴드와 주목할 만한 업종이 있다면요.
(김형렬) “올해 코스피지수 평균은 약 2350선이었고 2017년에는 2311선이었습니다. 내년은 2300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낙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지수 평균의 흐름은 수출 변화의 방향 및 강도와 거의 일치합니다. 내년 수출이 감소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우리 경제가 보여줄 수 있는 정책 대응 능력과 기업들의 위기관리 능력은 지난 10년간 향상됐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2000선이지만 지수 평균과의 괴리를 좁히는 ‘정상화’ 과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자산배분 전략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난 10년간 주식이 주인공이었다면 올해에 이어 내년의 주인공은 채권일 겁니다. 주식에서 기대하는 건 ‘화려한 조연’ 정도입니다.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오더라도 충분히 제 몫은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앞서 전반적인 증시 업그레이드의 조건으로 배당을 말씀하셨습니다.
(김형렬) “업그레이드는 주식의 본질, 즉 이익과 같이 봐야 합니다. 증시가 일정 수준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는 이익에 따라 결정됩니다. 코스피지수가 1990선에 머무를 때 상장사들의 연간 순이익은 약 30조원이었습니다. 10여년 전에 이익이 60조~80조원까지 증가했을 때 지수가 2000을 넘었고, 지금은 순이익 기준 130조~150조원 수준인데 그만큼 지수가 올라오지 못한 상태입니다.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죠.
업종은 통신과 조선, 건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가 오고 있지만 이에 맞춰 정책이 바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의 정책카드가 없는 상황이라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가 필요해요. 현 정부 최대 문제는 산업정책이 없다는 점인데 이전 정부에서 기업 지원과 관련해 도덕성 문제가 불거졌던 영향이 큽니다. 그러나 내년 경제를 헤처나가기 위해 산업정책은 반드시 필요하고, 단순 수출경제나 내수경제에 대한 지원에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책을 강구하게 될 겁니다. 결국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프라에 관련된 조선, 건설이지요. 통신과 건설 부문은 고용 효과도 있고요.
내년은 정책 테마가 무궁무진하게 많아지면서 시장 주도주가 시시각각 바뀔 겁니다. 증시가 1년 내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상화된 후에는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겠고, 특정 주도주가 지속되는 시간이 3~6개월에 불과할 겁니다. 순환이라는 개념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게 좋겠습니다. IT·반도체는 시장수익률과 연동된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한진) “저희 하우스뷰는 코스피지수가 2000~2500 사이입니다. 주도주는 가치주 중 PER이 낮은 종목들입니다. 다만 하반기에 경기 불확실성이 다소 제거되며 성장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00선 중심의 박스권 장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이 싼 건 맞지만 이 구간을 못 벗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고, 종목성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초 과세 문제 등으로 수급이 악화됐고 10월 이후 기관 손절매가 증가하며 ‘옥석 가리기’가 전혀 안 된 상태입니다. 2020년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혁신성장 관련 정책을 펼칠 거라는 기대도 남아있고요. 중소형주 중 히든 챔피언이나 낙폭이 큰 종목들이 제 가격을 찾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코스닥 중소형주, 일명 ‘잡주’의 시대가 올 수도 있겠군요.
(김형렬) “우리 경제에서 필요한 과정이지요. 바이오 기업도 덩치가 급격히 커졌는데 수많은 ‘잡주’들 중 셀트리온과 메디톡스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경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고요. 기업의 현재 재무 데이터만 보고 성장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초등학생이 받아쓰기를 못한다고 공부를 포기시키는 것과 다름 없지요. 좋게 말하면 개별주 장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고, 우리 경제가 직면한 환경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여기에 적응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불확실성은 언제 해소될까요.
(김한진) “미국 주가가 싸지면 해소될 겁니다. 2000년대에 비해 배당은 서너 배 더 주고 있고 금리 대비 시장의 밸류에이션도 더 유리해지고 있고요. 나스닥 핵심 기업들의 이익 비중이 높은데 아마존 등의 실적은 크게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버텨주고 지수가 싸지면 반등의 계기를 미국 장이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 시장 밸류에이션의 매력 상승과 중국 경기 불확실성 제거가 맞물리면 시장이 가닥을 잡고 조기에 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년이 가기 전에 불확실성이 해소될 확률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주가가 더 떨어져 불확실성이 거의 반영되면 다시 반등할 가능성도 있지요. 그러나 이렇게 주가가 꺾이면 경기가 둔화되고 기업 이익이 부진할 것이고, 투자자들이 올해 증시의 고점을 거품으로 인식하면서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내년에 미국과 한국 장이 어떤 악재에도 떨어지지지 않는, 바닥을 확인하는 시점이 있을 겁니다. L자형 즉 하락을 멈추고 박스권 장세에 들어서는 시기죠. 한국은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중 무역분쟁이 중간선거 이후 끝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이제는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김한진) “500억달러 규모의 수출 제품에 25%의 관세가 부과되는 것을 보고 미중 무역분쟁이 길게는 7-8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썼습니다. 관세가 적용되는 제품 종류가 중국의 ‘제조 2025’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패권 분쟁이 미국의 아젠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미국은 최근 20~30년간 수입 관세율을 30%에서 10%까지 내렸는데 이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릴 수 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은 적어도 2020년 미국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고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은 계속 협상을 시도할 텐데, 미국이 중국에 원하는 가장 큰 것은 시장 개방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통화정책과 금융시장 시스템 등을 고려했을 때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반도체 시장 전망은 어떻습니까.
(김형렬) “과거 반도체 가격은 휴대폰과 PC 등 내구재 수요와 연동됐다면 이제는 서버용 즉 기업 수요와 연동됩니다. 향후 도래할 4차 산업혁명 및 통신 환경에서 반도체 수요가 지난 1~2년의 호황으로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속도가 느려질 순 있겠지만, 반도체 수요가 커지고 시장이 성장할 거라는 방향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내년 상반기 삼성전자 실적과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우리 기업들보다 뒤따라 오던 글로벌 기업들이 더 타격을 받습니다. 시장 여건이 안 좋아지면 승자독식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우리가 승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반도체가 우리 산업에서 버팀목이 될 여지가 더 크다는 논리지요. 우리 기업들은 이전에도 치킨게임에서 이겨 봤고요. 걱정은 되지만 감당하며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노유정/전범진 기자 yjroh@hankyung.com
‘관록’과 ‘패기’가 맞붙은 이 날 방담에서 두 전문가의 내년 증시 전망은 크게 엇갈렸다. 김 연구위원은 “내년 코스피지수에 대한 KTB투자증권 공식 견해는 2000~2500이지만 개인적으론 많이 양보해도 2000선을 중심으로 한 박스권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기 사이클이 바닥을 찍기 전까지 반등이 쉽지 않다는 시각이다. 반면 김 센터장은 “10년 사이 한국 기업의 기초체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내년 코스피 평균은 2300 전후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전문입니다.
◇김형렬=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한진=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지난해에 올해 전망을 내놓을 당시 조정장을 예상했습니까.
(김형렬) “올해 저희 하우스가 내세운 타이틀은 ‘버블 3.0’ 이었습니다. 경기 확장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에 비해 자산시장에 형성된 버블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 등을 거론했습니다. 즉 시장이 저평가되고 매력을 잃어갈 것으로 봤습니다. 당시 저희가 상대적으로 보수적 의견을 냈는데, 지금은 반대로 시장을 가장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하우스가 됐습니다.”
▶하락폭이 이 정도일 것으로 보셨나요.
(김형렬) “급락할 것으로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에 1980년대 ‘블랙 먼데이’ 사태와 비교하는 보고서를 내긴 했지만 증시를 보수적으로 봤던 이유는 주식보다 채권의 투자 매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이나 20년 전 겪었던 시스템 리스크나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제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간 장기 호황이 이어졌던 만큼 부담을 느낀 게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죠.
문제는 최근 10년 사이에 나타난 변화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양극화인데, 경제 호황으로 소득이 크게 늘었는데도 주변을 보면 흥청망청 돈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과소비나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 선행소비 행태가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서 발생하는 위기나 후퇴 과정이 투자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물론 많이 불편할 수 있겠지만 미래 소득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김한진) “2018년은 경기 측면에서 불확실성과 악재에 민감한 시기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글로벌 경기 사이클입니다. 올 초에 경기가 꺾이는 초기 단계인 ‘레이트 사이클(경기 확장 후반부)’에 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레이트 사이클에서는 보통 불확실성이 큰데 이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봤습니다.
유동성 측면에서는 경기가 이미 꺾였음에도 미국 연준이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데드 크로스’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달러가 강세를 띨 가능성이 있어 신흥국 시장으로 돈이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전반적으로 2018년은 고생스러운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죠.
돌이켜 보면 당시 예상은 맞았지만 실제로는 더 나빴습니다. 1년 전의 내년과 2020년 전망보다 지금의 내년과 2020년 전망이 더 부정적입니니다. 시장을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낙관적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전망치의 하락세가 중단되면 경기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시장이 안정될 텐데, 지금은 안정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 같습니다.”
(김형렬) “박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올해 예측 중 제가 틀린 것이 있다면 환율입니다. 올해 글로벌 경제는 확장구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신흥통화나 달러를 제외한 통화의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봤는데 예상보다 달러가 강세였지요. 달러 강세를 자극한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감세안 등 정책이었습니다. 반면 미·중 무역부쟁 이슈가 불거져 위안화 약세는 예상보다 심했지요. 다만 흥미로웠던 건 달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따라갔고, 위안화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정치적 위상과 힘의 크기에 비례했다는 겁니다.”
▶증시 조정이 예상보다 일찍 왔다고 보십니까.
(김형렬) “올 초에 보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지수(MSCI World Index)가 지난해에 월간 수익률 기준으로 한 번도 마이너스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역대 처음입니다. 일종의 쏠림현상이 심화됐다는 걸 지적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우려를 희석시킨 건 올해 경제 전망이 나쁘지 않았다는 겁니다. 2017년 경제가 나쁘지 않았고 호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가 강했기 때문에, 쏠림 현상을 지적했을 때도 오히려 시장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본다는 말을 들었죠.”
▶상반기에 상승하고 하반기에 떨어지는 ‘상고하저’일 거라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2월부터 점진적인 조정이 왔는데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처럼 급격한 조정이 아닌, 이런 조정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까.
(김한진) “말씀하신 것처럼 조정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나 시스템 문제로 충격을 받아 단기간에 시장이 급락하는 형태입니다. 그 예로 2004년에 조선주가 급락할 때 현대중공업 주가가 60만원대에서 반토막 수준인 30만원대로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한 달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경기 사이클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이른바 ‘정상적인 조정’입니다. 거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이 가치를 찾아가는 조정으로 최근 장이 이런 유형입니다.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그간의 주가 상승 요인인 경기와 유동성이 약해지며,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크지 않은 데도 조정이 오는 거죠. 이 경우 장은 ‘L자’ 형태를 보이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박스권에 갇히게 됩니다.
다만 이번 조정이 지난 2월과 6월, 10월 총 세 번 떨어진 것이 특이한 점인데 이는 그간의 통화팽창으로 과거와 달리 유동성의 변화가 시장에 충격을 주는 정도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산시장이 세계적으로 동조화되며 환율 변화가 신흥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신흥국은 경기가 1만큼 약해져도 자산가격이 2만큼 떨어지는 등 실물시장보다 자산시장의 민감도가 높아졌죠. 최근 10년간 유동성이 풀리며 통화가 10년 전에 비해 4배 가량 늘어났는데, 상당량이 자산시장에 돌고 있는 만큼 글로벌 자산시장이 금융 상태에 민감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가 하락하면 유동성이 영향을 받고 자산가치가 떨어지며 다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역자산 효과’도 커졌습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유동성이 풀리며 발생한 현상인데, 사람들이 유동성 환경이 자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예측 오류가 나는 거지요.”
(김형렬) “올해 조정은 2011년의 조정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번 조정은 리플레이션(점진적 물가 상승)의 끝자락에서 통화정책의 변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줬습니다. 2011년 8월도 그랬습니다. 양적완화를 재개하고 선진국의 중앙은행 간 정책기조가 강화돼 저금리를 바탕으로 경기 여건 자체는 좋아졌고, 주식시장은 경제에 대한 기대를 선반영했습니다. 하지만 실물 시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요. 우리나라는 좋았지만 선진국은 회복 정도가 느렸죠.
그러다 ‘출구 전략’ 논의가 나오자 우려가 생겼습니다. 출구 전략이라는 정책 기조의 변화는 금리 환경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정부 부채 문제 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며 정부 부채에 대한 문제의식이 시장에 생겼고 이는 미국보다 유럽 등 재정이 불량한 나라들로 퍼졌습니다. 당시 미국 증시가 한 달에 11% 빠졌지만 우리 주식은 지난 10월처럼 21% 빠져 2150선에 있던 코스피가 1700선 밑으로 내려갔죠.
당시는 금융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단기 리플레이션의 끝자락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신 지금은 경기가 좋아졌죠.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나고 고용과 실질 생산이 좋아진 상태에서 선진국이 앞으로 닥칠 경기 둔화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기적 관점의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올해 연준이 금리를 네 번 인상할 거라고 했을 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제로 연준은 단행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주식시장에 먼저 조정을 준 겁니다.
2011년 당시 그리스 문제 등 정부 부채에 대한 지적이 나왔고, 실제 취약성을 확인하고 어려움이 커지면서 시장 정체가 오래 이어졌습니다. 내년 상반기부터 경제주체인 가계와 정부, 기업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텐데 저는 정부 재정 쪽에서 문제가 드러날 여지가 크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셧다운 사태 등 문제는 이미 불거지고 있죠. 이런 문제를 예전 방식으로 수습할 것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올해 증시 향방이 달려있다고 봅니다.”
▶과거 위기상황에서는 국가 지도자들의 빠른 결단으로 정책적인 공조가 이뤄졌고, 이후 시장도 조정을 벗어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 조정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갈 거라고 보시나요?
(김한진) “저는 트럼프 대통령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닷컴 버블 때 형성된 미국의 4차 산업혁명 생태계가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를 기반으로 꽃피우며 최근 10년간 경기가 좋았어요.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던 벤 버냉키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통화를 찍어 시장에 푸는 ‘헬리콥터 머니’로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경기를 부양하고 자산시장을 키웠습니다. 다만 모든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첫 번째로 미국의 납세자들이 통화팽창의 비용을 지불했고, 두 번째로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골고루 분담했다고 봐야 하지요. 당시 돈을 풀지 않았다면 신흥국들이 낮은 금리로 달러를 차입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지금은 양적완화의 연장선상에서 신흥국이 값싼 달러를 대거 차입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분쟁 정책도 30~40년간 이어져 온 국제 무역질서의 한계를 표출하는 ‘트리거(방아쇠)’ 역할일 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어도 무역분쟁은 결국 생겨났을 겁니다. 역사적으로 무역분쟁이 있을 만한 상황, 중국의 패권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라는 인물을 미국이 선택한 거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군요.
(김한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급진적이고 트럼프 대통령 자체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형성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산시장 위기의 본질은 아닙니다. 내년 2월말께 무역분쟁이 해결된다고 해도 큰 경기 사이클이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불확실성은 다소 제거되겠지만 관세율을 기존에 공표했던 것보다 낮추는 정도일 것이고 전세계 경기 사이클이 바뀔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국내 증시로 주제를 돌려봅시다. 한국이 잘 버티고 있다고 보십니까.
(김형렬) “그렇습니다. 주가수익률을 봤을 때 내년에 대한 우려는 올해 장에 대부분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기대보다는 덜하지만 우리 경제는 성장했고 상장사들의 이익도 늘어났는데 주가가 후퇴했다는 건 내년의 우려를 반영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하지요. 문제는 내년에 실제로 더 안 좋아질지 여부인데, 우리 기업들이 지난 10년간 펀더멘털(기초체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온 만큼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1월 전망 보고서에서 ‘미디어콘드리아(미디어가 주는 정보를 스스로 해석해 질환을 자가진단하는 등 미디어를 의사보다 신뢰)’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 사안에 대해 과거와 달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어서 시장을 전망하는데, 요즘 희망적인 내용보다는 보수적인 내용들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려가 과하게 반영됐다고 보고 있고 올해 너무 비관적으로 출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장이 버티는 이유는 한국 장이 이미 조정을 받았고, 연말 기관의 순매수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인가요?
(김형렬)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 자금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흔히 증시 하락의 이유를 외국인의 ‘셀코리아’라고 하는데, 외인 시가총액은 지분율로 보면 올 초 대비 0.7% 정도 줄었습니다. 전체 시총이 15% 감소한 걸 고려할 때 엄밀히 말하면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습니다. 규모만 보고 외인이 7조원어치 팔았으니 셀 코리아라고 하면 개인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입니다. 오히려 국내 증시가 부진하고 대외 충격에 쉽게 무너지는 건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에 관심을 안 두기 때문입니다. 최근 은행과 증권사의 주력 상품을 보면 대부분 미국 주식 등 해외 투자 관련입니다.
현재 국내 부동자금이 1500조원을 넘습니다. 부동자금은 잠깐의 자산가치 변동만 생겨도 이동할 준비가 돼 있는 돈이죠. 2017년에 주식이 뜨니 올 초 거래대금이 급등한 게 그 예고요. 그런데 올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대상은 부동산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이 부동산으로 몰려가는데 주식이 저평가됐다고 해도 귀에 들어올 리 없죠.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진 건 맞지만 올해 주가가 하락한 주요 원인은 증시의 매력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이익 증가율을 빼고 국내 증시에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한 거지요.
경제와 금융을 비교해 시장이 저평가됐는지 평가하는 ‘워렌 버핏 지표’가 있습니다. 올해 예상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700조원 중반대였습니다. 연초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이 1700조원 이상으로 저평가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그 이상 가려면 프리미엄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선진국 경제이든가 배당이 높아야 합니다. 한국은 두 가지 다 충족하지 못해 지수가 떨어졌죠. 현재는 시총 1300조원 수준으로 저평가 매력이 생긴 대신 허들(장애물)을 갖게 됐습니다. 다른 선진국 증시처럼 장이 중장기적으로 오르기엔 한계가 있는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죠.”
▶내년 글로벌 증시 전망은 어떻습니까.
(김한진) “이코노미스트의 관점에서 현재 전 세계 증시는 전형적인 역실적 장세(기업 실적이 안 좋아져 시장이 하락하는 장)입니다. 내년에는 전반적으로 주가가 악재에 민감하고 호재에 둔감할 겁니다. 경기가 하락하고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그동안 좋았던 경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일 수 있습니다. 지난 6~7년간 선진국 경기가 좋았고 앞서 말했듯 경기 확장기에 시장은 이미 재평가됐기 때문에, 이제는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지는 디레이팅(de-rating)이 생길 수 있어요. 경기가 1만큼 안 좋아지면 주가가 0.5만큼 빠져야 하는데 지금 시장은 더 민감한 상태입니다. 경기 다운사이클 우려와 이미 이뤄진 통화 정책이 증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연준이 금리인상을 내년 중반에 멈춘다고 해도 이미 올린 금리가 유동성 환경을 지배할 거라고 봅니다.”
▶자영업자 붕괴, 최저임금 인상 등 한국에는 특수한 요인들도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한진) “경기 측면에서는 더 안 좋습니다. 최근 경기 사이클의 특징은 미국과 유로존 등 선진국과 신흥국 경기의 차별화가 커진다는 점입니다. 주가뿐 아니라 실물경기의 차이도 전에 없던 수준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경기는 양적 성장하며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과제를 안고 있고, 미국은 통화팽창의 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신흥국 시장은 그런 요인이 없습니다.
또 최근 10년간 전 세계 경기의 특징은 혁신성장 기업들이 주축이 됐다는 점입니다. 나스닥시장 영업이익의 20%가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외 10개사에서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기업이 존재해야 경기와 증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최근 미국 경기 호황의 수혜를 누렸습니다. 과거에는 미국 경기가 좋으면 중국 경기도 살아났고 산업재, 자동차 등 전통 산업도 살아났지만 이제는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정보기술(IT), 반도체 및 통신장비 수입은 늘었지만 전체적인 소비재 수입은 정체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신흥국으로 부가 흘러가는 낙수 효과가 약해지며 선진국과 신흥국 경기가 차별화된 겁니다. 대표적인 디커플링(탈동조화) 국가가 중국이고, 중국에 연동된 한국 경제도 반도체를 제외하면 수출이 정체 상태입니다. 중국도 수출이 정체되며 외환보유고가 줄고 경기가 둔화되는 거지요. 재고가 쌓일 테고 디레버리징 압박은 더 세질 겁니다.
한국의 경우 경기 성장의 상당 부분을 건설 부문이 차지하는 사회간접투자(SOC) 예산이 줄었고 민간 건설 경기는 둔화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성장 트랩’에 빠지는 겁니다. 게다가 정책 구심점도 약하고 산업정책도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경제는 선진국은 물론 다른 신흥국보다도 경기 성장 모멘텀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경기를 증시의 주요 요인으로 보신다면 김 센터장과 다소 다른 전망인 듯합니다.
(김한진) “경기 하강기에 기업 이익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런 일은 드물지요. 주가는 경기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센터장님 예측이 맞을 수 있습니다. 경기 사이클이 바닥을 딛고 불확실성이 보이지 않고, 시장이 이를 반영한다면 주가는 경기 사이클에 앞서 반등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2020년~2021년에 좋아진다고 해도 주가는 내년에 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 주가가 지금 많이 빠졌다는 것도 동의하고요. 현재 국고채 금리 대비 주가수익비율(PER)가 8~9배 수준인데, 조금 더 떨어지면 안전자산보다 주식을 사는 게 이익일 수 있습니다. 배당수익률만 해도 2~3% 이상인 종목들이 많고요. 대체자산보다 주식이 싼 상태인 건 동의합니다.
또한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외국인 매수세의 트리거인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내년에 해소되면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공격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한국 시장이 많이 떨어진 데다 환율 측면에서 선진국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 환율이 15%가량 절하됐는데 원화는 5% 떨어졌습니다. 유로화 수준으로 외환 펀더멘털이 매우 튼튼합니다. 다만 경기도 튼튼했다면 환율과 맞물려 우리 증시가 선진국에 연동됐을 텐데 경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연동된 거지요.
중국 경착륙 우려가 해소되면 외인은 한국 주식을 사지 말라고 해도 살 겁니다. 달러가 계속 강세일 순 없고 신흥국 통화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는 시기도 결국 올 테니까요. 중국의 경착륙 및 디레버리징 불확실성이 해소된 후 그 시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준의 마지막 인상기에 전세계 경기가 꺾이면서 달러가 쉽게 초약세로 가기는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금리 인상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최근 파월 의장 해임 논란도 나왔는데요.
(김형렬) “파월 의장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을 해왔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목소리가 얽히며 논란이 되긴 했지만 성향 자체는 전임 의장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Fed 총재로서 정책으로 현재 경기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건 의무이자 권한이라는 시각에서 봤을 때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봅니다.”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건 내년 전망인 것 같습니다. 예상 코스피 밴드와 주목할 만한 업종이 있다면요.
(김형렬) “올해 코스피지수 평균은 약 2350선이었고 2017년에는 2311선이었습니다. 내년은 2300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낙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지수 평균의 흐름은 수출 변화의 방향 및 강도와 거의 일치합니다. 내년 수출이 감소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우리 경제가 보여줄 수 있는 정책 대응 능력과 기업들의 위기관리 능력은 지난 10년간 향상됐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2000선이지만 지수 평균과의 괴리를 좁히는 ‘정상화’ 과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자산배분 전략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난 10년간 주식이 주인공이었다면 올해에 이어 내년의 주인공은 채권일 겁니다. 주식에서 기대하는 건 ‘화려한 조연’ 정도입니다.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오더라도 충분히 제 몫은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앞서 전반적인 증시 업그레이드의 조건으로 배당을 말씀하셨습니다.
(김형렬) “업그레이드는 주식의 본질, 즉 이익과 같이 봐야 합니다. 증시가 일정 수준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는 이익에 따라 결정됩니다. 코스피지수가 1990선에 머무를 때 상장사들의 연간 순이익은 약 30조원이었습니다. 10여년 전에 이익이 60조~80조원까지 증가했을 때 지수가 2000을 넘었고, 지금은 순이익 기준 130조~150조원 수준인데 그만큼 지수가 올라오지 못한 상태입니다.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죠.
업종은 통신과 조선, 건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가 오고 있지만 이에 맞춰 정책이 바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의 정책카드가 없는 상황이라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가 필요해요. 현 정부 최대 문제는 산업정책이 없다는 점인데 이전 정부에서 기업 지원과 관련해 도덕성 문제가 불거졌던 영향이 큽니다. 그러나 내년 경제를 헤처나가기 위해 산업정책은 반드시 필요하고, 단순 수출경제나 내수경제에 대한 지원에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책을 강구하게 될 겁니다. 결국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프라에 관련된 조선, 건설이지요. 통신과 건설 부문은 고용 효과도 있고요.
내년은 정책 테마가 무궁무진하게 많아지면서 시장 주도주가 시시각각 바뀔 겁니다. 증시가 1년 내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상화된 후에는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겠고, 특정 주도주가 지속되는 시간이 3~6개월에 불과할 겁니다. 순환이라는 개념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게 좋겠습니다. IT·반도체는 시장수익률과 연동된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한진) “저희 하우스뷰는 코스피지수가 2000~2500 사이입니다. 주도주는 가치주 중 PER이 낮은 종목들입니다. 다만 하반기에 경기 불확실성이 다소 제거되며 성장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00선 중심의 박스권 장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이 싼 건 맞지만 이 구간을 못 벗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고, 종목성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초 과세 문제 등으로 수급이 악화됐고 10월 이후 기관 손절매가 증가하며 ‘옥석 가리기’가 전혀 안 된 상태입니다. 2020년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혁신성장 관련 정책을 펼칠 거라는 기대도 남아있고요. 중소형주 중 히든 챔피언이나 낙폭이 큰 종목들이 제 가격을 찾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코스닥 중소형주, 일명 ‘잡주’의 시대가 올 수도 있겠군요.
(김형렬) “우리 경제에서 필요한 과정이지요. 바이오 기업도 덩치가 급격히 커졌는데 수많은 ‘잡주’들 중 셀트리온과 메디톡스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경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고요. 기업의 현재 재무 데이터만 보고 성장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초등학생이 받아쓰기를 못한다고 공부를 포기시키는 것과 다름 없지요. 좋게 말하면 개별주 장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고, 우리 경제가 직면한 환경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여기에 적응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불확실성은 언제 해소될까요.
(김한진) “미국 주가가 싸지면 해소될 겁니다. 2000년대에 비해 배당은 서너 배 더 주고 있고 금리 대비 시장의 밸류에이션도 더 유리해지고 있고요. 나스닥 핵심 기업들의 이익 비중이 높은데 아마존 등의 실적은 크게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버텨주고 지수가 싸지면 반등의 계기를 미국 장이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 시장 밸류에이션의 매력 상승과 중국 경기 불확실성 제거가 맞물리면 시장이 가닥을 잡고 조기에 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년이 가기 전에 불확실성이 해소될 확률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주가가 더 떨어져 불확실성이 거의 반영되면 다시 반등할 가능성도 있지요. 그러나 이렇게 주가가 꺾이면 경기가 둔화되고 기업 이익이 부진할 것이고, 투자자들이 올해 증시의 고점을 거품으로 인식하면서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내년에 미국과 한국 장이 어떤 악재에도 떨어지지지 않는, 바닥을 확인하는 시점이 있을 겁니다. L자형 즉 하락을 멈추고 박스권 장세에 들어서는 시기죠. 한국은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중 무역분쟁이 중간선거 이후 끝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이제는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김한진) “500억달러 규모의 수출 제품에 25%의 관세가 부과되는 것을 보고 미중 무역분쟁이 길게는 7-8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썼습니다. 관세가 적용되는 제품 종류가 중국의 ‘제조 2025’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패권 분쟁이 미국의 아젠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미국은 최근 20~30년간 수입 관세율을 30%에서 10%까지 내렸는데 이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릴 수 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은 적어도 2020년 미국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고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은 계속 협상을 시도할 텐데, 미국이 중국에 원하는 가장 큰 것은 시장 개방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통화정책과 금융시장 시스템 등을 고려했을 때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반도체 시장 전망은 어떻습니까.
(김형렬) “과거 반도체 가격은 휴대폰과 PC 등 내구재 수요와 연동됐다면 이제는 서버용 즉 기업 수요와 연동됩니다. 향후 도래할 4차 산업혁명 및 통신 환경에서 반도체 수요가 지난 1~2년의 호황으로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속도가 느려질 순 있겠지만, 반도체 수요가 커지고 시장이 성장할 거라는 방향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내년 상반기 삼성전자 실적과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우리 기업들보다 뒤따라 오던 글로벌 기업들이 더 타격을 받습니다. 시장 여건이 안 좋아지면 승자독식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우리가 승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반도체가 우리 산업에서 버팀목이 될 여지가 더 크다는 논리지요. 우리 기업들은 이전에도 치킨게임에서 이겨 봤고요. 걱정은 되지만 감당하며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노유정/전범진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