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은 앞으로 '2등의 반란' 기획을 통해 흥미진진한 역전 성공스토리를 세상에 알릴 예정이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뿐만 아니라 히트 상품, 스타 기업, 잭팟을 터뜨린 비즈니스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만 골라내 집중 조명한다. 역전 스토리를 써낸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서 혜안을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출처=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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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수년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이미지는 ‘왕년의 강자’였다. 1990년대 누린 전성기는 흘러간 영광으로 치부되곤 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하면 MS를 제치고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부터 거론됐다.

그랬던 MS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을 탄 MS는 2018년 말 애플을 밀어내고 글로벌 시가총액 1위(당시 8512억달러·약 942조3000억원)를 탈환했다. 2002년 이후 무려 16년 만의 ‘왕의 귀환’이었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사실 침체기에도 MS의 실적이 최악은 아니었다. 수익은 꾸준히 냈다. 문제는 이목을 끌 만한 혁신의 부재였다. 같은 개인용 컴퓨터(PC) 기업으로 출발한 애플이 아이폰 시리즈를 내놓는 동안 MS는 침묵을 지켰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MS의 반등을 이끈 승부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 머릿속 깊이 각인된 “MS는 곧 윈도”라는 공식을 과감히 깬 것이 주효했다.

2014년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의 등장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델라 CEO는 한때 윈도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PC 운영체제(OS) 점유율을 포기하는 대신 새 먹거리 클라우드(데이터의 외부 서버 저장기술)를 들고 나왔다.

나델라 CEO 취임 후 MS는 성장일로를 걸었다. 수치가 입증한다. 2014년과 비교해 매출은 약 30%(868억3300만달러→1103억6000만달러), 주가는 3배 이상(37달러대→112달러대) 뛰었다.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 사업 매출은 몇 년 만에 MS 전체 매출의 3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MS의 킬러콘텐츠 윈도의 쇠락은 예견됐다. 시장 환경이 완전히 달라져서다.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비중 급증과 반비례해 데스크톱 PC 비중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OS 주도권 역시 애플 iOS, 구글 안드로이드 등 모바일로 넘어갔다.

MS 역시 모바일 시장을 외면하지만은 않았다. 스티브 발머 전 CEO 시절인 2013년 노키아에게서 스마트폰 사업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모바일에서 앞서나가는 애플·구글과 맞설 심산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 인수 3년 만에 스마트폰 사업을 폭스콘에 매각하면서 빠르게 접었다.
지난해 11월 방한해 '퓨처 나우'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 하는 사티아 나델라 MS CEO.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방한해 '퓨처 나우'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 하는 사티아 나델라 MS CEO. / 사진=연합뉴스
모바일에 타깃팅한 ‘전장(戰場) 설정’이 잘못된 건 아니었으나 ‘자체역량 분석’에 문제가 있었다. MS의 핵심 경쟁력은 윈도, 오피스 같은 소프트웨어(SW)였다. 나델라 CEO는 하드웨어 분야에서 다퉈봐야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클라우드 시장도 선두주자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SW라면 MS가 해볼 만하다고 봤다.

나델라 CEO가 자서전 〈히트 리프레시(Hit Refresh)〉에서 강조한 “사람과 시장, 미래에 공감하라”는 메시지처럼 클라우드 퍼스트는 ‘미래 시장 흐름에 조응하면서 MS가 잘할 수 있는 것’의 교집합이었던 셈.

클라우드는 구조적 급성장이 예고된 산업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 규모가 연평균 23% 내외 성장해 2016년 782억달러에서 2020년 1761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클라우드가 각광 받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원유인 빅데이터를 담을 그릇이 마땅찮은 탓이다. 데이터 크기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개별 하드웨어 장치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클라우드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빅데이터를 분석·활용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IT 기업들은 공유를 통해 크기 문제를 해결하고 비용절감 효과까지 내는 클라우드 산업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MS는 단순 데이터 저장공간 판매를 넘어 윈도·오피스까지 묶는 통합 SW 판매방식으로 차별화, 같은 조건이라면 MS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기존 경쟁력을 결합해 강점으로 부각한 것이다. 덕분에 MS는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에서 IBM과 구글을 제치고 AWS에 이은 2위(13.3%)로 뛰어올랐다.

이른바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혁신기업의 딜레마란 선도기술을 보유한 시장지배 기업이 더 이상 혁신하지 못하고 후발 혁신기업에 따라잡히는 현상을 뜻한다. MS 같은 시장지배 기업은 새로운 혁신에 나서기보단 확보된 기존 고객 요구에 맞춰 유지·보수에 안주하기 쉽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대응에 실패해 추락한 휴대폰 강자 노키아나 일찍이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어내고도 필름시장에 안주해 몰락한 코닥 등이 걸려든 이 악순환의 터널을, MS는 10년 넘게 걸려 빠져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혁신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은 MS처럼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일수록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면서 혁신을 회피한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창업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고 하지 않나. 발상을 전환해 재차 전성기를 맞았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여러 규제 이슈에 직면한 구글·페이스북, 각각 구독자 확보와 온라인 쇼핑에 의존하는 넷플릭스·아마존과는 다르다”며 MS 비즈니스 모델을 호평했다. 클라우드 퍼스트로 체질 개선한 MS의 제2전성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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