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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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국내 경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미국의 통화 정상화 속도를 뒤쫓는게 부담스럽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2일 기자단과의 신년 다과회에서 “올해 통화정책에는 미국의 영향이 어느때보다 클 것”이라며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늦춰진다면 시장 안정 차원에서도 좀 좋아보이고, 그랬으면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올 해 경기 침체가 심화되다보니 한은으로선 섣불리 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국 금리 인상 속도가 빠르면 금융 불안정성이 커지고 금리 역전폭도 벌어지기 때문에 한국도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야 한다. 이 총재 입장에선 통화 정책에 대외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바깥 여건이 워낙 중요한데 우호적인 게 별로 없다”며 토로했다. 또 “중앙은행은 원래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좋은데 중앙은행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은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물가 인상폭도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물가가 이렇게 떨어질 줄 몰랐다”며 “지난번에 봤던 것보다 밑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다. 한은이 지난해 10월에 내놓은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전망치인 1.7%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내 변수만 보면 올해 금리 인상 압박이 크지 않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다만 금융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놨다. 그는 “경기, 금융안정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상황은 올해도 마찬가지”라며 “(금융안정을) 완전히 제치기가 그렇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리인상 이후 불거진 취약차주 부실화 문제나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통화정책보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사회안정망 대책은 재정의 역할”이라며 “자영업자나 취약계층의 가계부채는 늘 그전부터 한번 대비를 해야겠다고 해왔지만, 중앙은행의 영역은 아니며, 정부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