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전의공장 착공 때의 윤동한 회장(앉은 자리 맨 왼쪽)
세종시 전의공장 착공 때의 윤동한 회장(앉은 자리 맨 왼쪽)
“목표를 분명히 하고 넘어져도 금방 일어설 줄 알아야 합니다.” 취업난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고언이다. 그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면 남 탓을 하거나 자신을 탓하는데, 모두 좋은 방법이 아니다”며 “가야 할 곳을 분명히 하고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가난과 학벌 콤플렉스를 이겨내며 꿈을 키운 기업인이다. 어린 시절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5남매의 가장이 됐다. 서울 유명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장학금을 받고 영남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1970년 첫 직장인 농협에 입사했다. 시험에 1등을 해도 승진, 연수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방대 출신이란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어느 날 유학길에 오른 고향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괴로운 상념에 빠져들었을 때 어느 날 읽은 책 속의 한 문장이 마음을 다잡게 해줬다.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는 것이었다. 유리천장을 깨려면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1975년 당시 중소기업이었던 대웅제약에 들어갔다. 업종은 상관없었다. 창업을 위해선 작은 곳에서부터 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평일에는 사무실에서, 주말에는 공장에서 살았다. 그는 경영진의 두터운 신임을 발판 삼아 공장 현장과 영업을 두루 경험했다. 차장으로 입사해 15년 만에 부사장을 달았다. 1989년엔 외국계 제약회사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제안을 받았다. 두 배의 연봉과 고급 차량을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1년 뒤엔 대웅제약 사장 자리가 그에게 왔다. 그때 박차고 나왔다. “전문경영인을 하는 것도 기업가의 꿈을 이루는 게 아닐까 고민했지만 사장직에 눌러앉으면 영영 창업 기회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어요.”

돌이켜 보면 기업인으로서 윤 회장의 일생은 버리고 포기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성공의 문은 늘 그를 향해 열렸다. 간절한 것을 포기하면서 생긴 여한을 다음 소망을 이루는 연료로 사용하는 것, 이것이 윤 회장의 진정한 성공 요인일지도 모른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