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승계는커녕…상속세 폭탄에 '눈물의 매각'나선 中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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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2019 - 이것만은 꼭 바꾸자
5. 가업승계 상속·증여세 부담 낮추자
"락앤락·쓰리세븐·유니더스 등 탄탄했던 기업
상속세 감당 못하고 사모펀드에 회사 넘겨
상속공제 있어도 조건 까다로워 이용안해
매출 3000억 이상 기업은 대상조차 안돼"
5. 가업승계 상속·증여세 부담 낮추자
"락앤락·쓰리세븐·유니더스 등 탄탄했던 기업
상속세 감당 못하고 사모펀드에 회사 넘겨
상속공제 있어도 조건 까다로워 이용안해
매출 3000억 이상 기업은 대상조차 안돼"
1978년 스물여섯 살 먹은 한 청년이 사업을 시작했다. 주방용품 유통 및 제조 사업이었다. 내용물이 새지 않는 밀폐용기를 만들어 미국과 한국 홈쇼핑에서 ‘대박’을 쳤다. 중국 진출을 기회로 회사가 가파르게 성장했다. 2013년 포브스코리아는 한국의 50대 부자 중 29위(자산 8049억원)에 이 청년의 이름을 올렸다. 밀폐용기 제조기업 락앤락을 설립한 김준일 회장 이야기다. 하지만 2017년 락앤락 최대주주는 홍콩 사모펀드로 바뀌었다. 김 회장은 지분 전량을 매각한 금액(6293억원)으로 베트남에서 새 사업을 시작했다.
불경기와 높은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 ‘꿈 못 꿔’
김준일 락앤락 회장은 “경영권을 2세에게 상속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고자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세율은 기본 상속세율 50%에 대주주 경영권 승계 할증이 더해진 65%. 상속세를 내기 위해 마련해야 하는 현금만 약 4000억원(매각대금 기준)에 달한다.
최고 65%에 이르는 높은 상속세율이 ‘백년대계 기업’의 암초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 손톱깎이 시장 1위를 지키던 국내 기업 쓰리세븐은 2008년 창업주 김형주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하며 위기에 빠졌다. 가업 승계를 해보려 했지만 상속세 중 일부를 현금으로 마련하지 못해 유족 지분 전량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국내 1위 종자기업 농우바이오 역시 창업주 별세 이후 상속세를 납부하지 못해 회사를 매각했다.
한때 세계 1위, 국내에선 압도적 1위인 콘돔 제조사 유니더스도 지난해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선대로부터 경영권을 받은 김성훈 대표는 50억원 규모 상속세 납부에 부담을 느껴 결국 경영권 매각을 선택했다.
중소기업도 아들·딸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꿈도 못 꾼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에 있는 한 문구 제조업체 사장은 몇 달 전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했다. 아들에게 가업을 승계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상속세 등 부담이 크고 아들도 제조업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산업단지에 있는 한 제조업체도 최근 회사 매각을 결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세금 부담과 장기 전망 불투명 때문에 창업주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매각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주변 중소기업들도 창업주가 70살을 넘기면서 가업 승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창업 10년 이상 된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8.0%만이 가업 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보다 9.8%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승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기업도 2017년 32.0%에서 지난해 40.4%로 늘었다. 가업상속공제 조건 너무 까다로워
독일은 한국처럼 상속세율이 50%지만 가업 승계에 한해서는 최대 100%까지 세금을 공제해준다. 한국에도 상속세를 줄여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5년만 경영해도 85%를 공제해주는 독일과 달리 한국에선 10년 이상 대표로서 직접 경영을 해야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제액이 늘어나는 경영 기간 조건도 10년, 20년, 30년으로 나뉘어 있다. 30년 이상 기업을 대표로서 경영해야 500억원을 공제받는다. 경영 기간과 관계 없이 매출이 3000억원 넘는 중견기업은 공제받을 수 없다.
요건을 채워 공제받아도 고용 조건이 바뀌면 공제받은 세금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기존 고용 인원이 10년 동안 줄어들면 안 된다. 10년 내에 가업용 자산을 20% 이상 매각해도 공제 조건에 어긋난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가업 승계 후 일어나는 기업 합병은 물론 조직변경 유상증자 등도 문제가 될 수 있어 공제제도를 이용하려는 기업이 매우 적다”고 말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2016년 기업들이 감면받은 상속세 총액은 735억원이다. 한 해 평균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기업은 약 60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의 상속세율이 높은 까닭은 부의 편법 승계를 막으려는 것인데 과거에 비해 기업 재무제표가 많이 투명해졌다”며 “상속세율을 낮추면 기업의 연구개발(R&D) 여력은 물론 일자리 창출 능력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불경기와 높은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 ‘꿈 못 꿔’
김준일 락앤락 회장은 “경영권을 2세에게 상속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고자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세율은 기본 상속세율 50%에 대주주 경영권 승계 할증이 더해진 65%. 상속세를 내기 위해 마련해야 하는 현금만 약 4000억원(매각대금 기준)에 달한다.
최고 65%에 이르는 높은 상속세율이 ‘백년대계 기업’의 암초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 손톱깎이 시장 1위를 지키던 국내 기업 쓰리세븐은 2008년 창업주 김형주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하며 위기에 빠졌다. 가업 승계를 해보려 했지만 상속세 중 일부를 현금으로 마련하지 못해 유족 지분 전량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국내 1위 종자기업 농우바이오 역시 창업주 별세 이후 상속세를 납부하지 못해 회사를 매각했다.
한때 세계 1위, 국내에선 압도적 1위인 콘돔 제조사 유니더스도 지난해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선대로부터 경영권을 받은 김성훈 대표는 50억원 규모 상속세 납부에 부담을 느껴 결국 경영권 매각을 선택했다.
중소기업도 아들·딸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꿈도 못 꾼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에 있는 한 문구 제조업체 사장은 몇 달 전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했다. 아들에게 가업을 승계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상속세 등 부담이 크고 아들도 제조업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산업단지에 있는 한 제조업체도 최근 회사 매각을 결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세금 부담과 장기 전망 불투명 때문에 창업주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매각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주변 중소기업들도 창업주가 70살을 넘기면서 가업 승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창업 10년 이상 된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8.0%만이 가업 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보다 9.8%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승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기업도 2017년 32.0%에서 지난해 40.4%로 늘었다. 가업상속공제 조건 너무 까다로워
독일은 한국처럼 상속세율이 50%지만 가업 승계에 한해서는 최대 100%까지 세금을 공제해준다. 한국에도 상속세를 줄여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5년만 경영해도 85%를 공제해주는 독일과 달리 한국에선 10년 이상 대표로서 직접 경영을 해야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제액이 늘어나는 경영 기간 조건도 10년, 20년, 30년으로 나뉘어 있다. 30년 이상 기업을 대표로서 경영해야 500억원을 공제받는다. 경영 기간과 관계 없이 매출이 3000억원 넘는 중견기업은 공제받을 수 없다.
요건을 채워 공제받아도 고용 조건이 바뀌면 공제받은 세금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기존 고용 인원이 10년 동안 줄어들면 안 된다. 10년 내에 가업용 자산을 20% 이상 매각해도 공제 조건에 어긋난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가업 승계 후 일어나는 기업 합병은 물론 조직변경 유상증자 등도 문제가 될 수 있어 공제제도를 이용하려는 기업이 매우 적다”고 말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2016년 기업들이 감면받은 상속세 총액은 735억원이다. 한 해 평균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기업은 약 60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의 상속세율이 높은 까닭은 부의 편법 승계를 막으려는 것인데 과거에 비해 기업 재무제표가 많이 투명해졌다”며 “상속세율을 낮추면 기업의 연구개발(R&D) 여력은 물론 일자리 창출 능력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