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해년(己亥年) ‘돼지의 해’다. 많은 사람이 돼지 모습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활용해 새해 인사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연하장에 등장하는 돼지는 실제 돼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돼지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은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가 숨어 있다.

돼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뚱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보이는 살색 돼지는 우리네 전통 돼지와는 거리가 멀다. 세계적으로 돼지의 품종은 100여 종에 달한다. 우리의 전통 돼지는 주로 만주지역에 서식하던 흑돼지로, 고구려 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와 일제 강점기까지 이어져 왔다. 오늘날 흔히 접하는 돼지는 전통 돼지와는 거리가 먼 외래종이거나 외래종과 교배된 잡종 돼지다.

1920년대 들어 조선총독부는 우리 전통 돼지인 재래 돼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외래종으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1927년 발간된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에는 ‘조선의 돼지는 체격이 왜소하고 비만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열등하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 우리네 재래 돼지는 80㎏ 수준까지만 크지만, 상업적으로 사육되는 외래 돼지는 100㎏ 넘게 성장한다. 조선총독부는 외래종인 버크셔종과 재래 돼지를 교배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요크셔종을 대거 도입하면서 재래 돼지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돼지가 더럽고, 게으르며, 아둔한 동물이라는 편견도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인당 연간 19.3㎏ 정도의 돼지고기를 소비한다. 소고기 소비량의 두 배다. 소비량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좁은 축사에서 가능한 한 많은 돼지를 키워야 한다. 결국 돼지 축사는 악취와 오물로 뒤덮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으며, 돼지 역시 이런 환경에서 사는 동물로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돼지의 지능은 개와 비슷한 수준이어서 사람의 얼굴 표정을 인식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가능하다고 한다. 고등 동물에게서만 보이는 호기심, 장기 기억력, 자의식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돼지가 지닌 새로운 경제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돼지와 사람은 8000만 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인간과 유사한 유전자를 9000개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인간과 돼지의 몸무게가 비슷한 경우 장기의 크기와 모양 또한 비슷하다. 이식용 장기를 얻을 수 있는 동물인 것이다. 돼지를 ‘인간화된(humanized) 동물’로 개발하는 나라도 많다. 앞으로 어떤 또 다른 경제적 요인이 돼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