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왕징지역의 대형 한국 식당과 유명 중국 식당이 최근 문을 닫았다. 한때는 평일 저녁에도 빈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이 많았지만 지난해 9월 이후 사정이 돌변했다. 경기 둔화세가 가속화하면서 지난달엔 매출이 연초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국 식당 매니저는 “중국인 손님이 많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소비 침체가 정말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중 통상전쟁 등의 영향으로 중국 경기 하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급속한 경기 냉각은 경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소매판매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1% 늘어났지만 증가율은 2003년 5월(4.3%) 이후 15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내수 경기의 바로미터인 자동차 판매는 13.9% 줄었고 스마트폰 출하량도 18.0% 감소했다. 이달 중순께 발표될 12월 소매판매 지표는 전달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판매 18% 급감…IT기업 무더기 감원
제조업 경기는 이미 불황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형 국유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1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4로 집계돼 경기 둔화와 확장을 가늠하는 기준선인 50 아래로 내려갔다. 2016년 2월(49.0) 이후 최저이기도 하다.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차이신 PMI도 지난달 49.7로 나타나 2015년 5월 이후 처음으로 50을 밑돌았다.

경기 상황이 나빠지면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도 늘고 있다. 그동안 고속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의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까지 속속 감원에 가세하고 있다.

중국 최대 음식 배달서비스 기업인 메이퇀뎬핑(美團點評)은 지난달 직원 250명을 해고했다. 한 직원은 “회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지 3분 만에 쫓겨났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배달 주문이 급감하면서 작년 3분기 24억6000만위안(약 4031억원)의 적자를 봤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기업인 징둥닷컴은 전체 직원의 10%가량인 7000명을 퇴사시켰고 당분간 신입사원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서비스 기업 디디추싱은 작년 말 보너스를 전년의 절반으로 줄였다. 경기 상황에 대한 우려로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자 지난달 치러진 중국 대학원 입학시험에선 응시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 2019학년도 대학원 입학시험 응시자는 전년보다 52만 명(21%) 증가한 290만 명에 달했다.

중국 정부가 총력전 수준의 경기 살리기 대책을 쏟아내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나쁘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은 올 들어 개인소득세 감면, 주택임대 대출 이자 감면 등의 부양책을 시행하고 있다. 인민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실적이 좋은 시중은행에 적용하는 지급준비율 인하 기준을 대출 건당 500만위안(약 8억1000만원) 이하에서 1000만위안 이하로 확대했다. 은행의 대출 여력을 키워 더 많은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베이징시는 심야시간대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내 상점과 음식점에 24시간 영업을 장려하고 나섰다. 심야 영업을 하는 일부 상점에는 10만위안(약 1630만원)의 보조금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기 급랭 흐름을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6.2~6.3%로 전망되고 있지만 실제론 훨씬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경기가 더 둔화할 것으로 보고 올해 상반기 원유 수입 할당량을 작년 상반기보다 25.9% 줄인 8984만t으로 정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