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참여 확대…전문가 추천 놓고 노·사 갈등 예상
'최저임금 구간' 전문가가 정한다지만…공정성 논란 계속될 듯
정부가 7일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강화를 명분으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내놨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날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를 둬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먼저 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간설정위원회가 정한 최저임금 인상 상·하한선은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에 제출되고 최저임금은 그 범위 안에서 정해진다.

구간설정위원회가 노·사 양측의 협상을 사실상 제한하도록 해 전문가의 개입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사 교섭 중심의 현행 방식이 논란의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이재갑 장관도 "이제까지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의 최초 제시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돼 처음부터 노·사 교섭 식의 극심한 갈등이 노정됐다"고 지적했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계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방식인데 노·사의 극심한 대립으로 파행이 잦았다.

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32번에 걸친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표결 없이 노·사·공익위원의 합의로 결정한 경우는 7번에 불과했다.

표결로 결정한 25번 중에서도 노·사 모두 표결에 참석한 것은 8번밖에 안 됐다.

노·사 중 한쪽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다.

노·사의 입장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2016년 적용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는 근로자위원이 최초 요구안으로 79.2% 인상을 제시한 반면, 사용자위원은 0% 인상(동결)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저임금 구간' 전문가가 정한다지만…공정성 논란 계속될 듯
노·사의 대립 구도 속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것은 공익위원이었다.

공익위원은 대부분 대학교수와 연구기관 연구원 등 전문가들이지만, 9명 모두 노동부 장관이 추천하게 돼 있어 정부 입김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구간설정위원회 신설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간설정위원회 구성 과정부터 노·사의 첨예한 대립이 불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간설정위원회는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되는데 노·사 양측과 정부가 각각 5명씩 모두 15명을 추천하고 노·사가 순차적으로 3명씩 배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순차 배제는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위촉에도 사용되는 방식이다.

노동위원회와 노·사 양측의 추천자 명단에서 노·사가 순차적으로 배제하고 남는 사람을 공익위원으로 위촉한다.

노·사 양측이 보기에 편향된 인사를 제외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해 논란의 여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사가 상대편 추천 인사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노·사가 눈에 띄는 이력을 가진 인사를 순차적으로 배제하면 별다른 이력이 없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만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사의 순차 배제에서 남은 인사에 대해서도 이력 등을 토대로 성향 분석이 이뤄져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재연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결정위원회의 공익위원 추천 권한을 정부가 독점하지 않고 국회나 노·사 양측이 추천권을 나눠 갖도록 하는 방안도 공정성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익위원 추천에 국회가 개입할 경우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

2017년 활동한 최저임금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도 국회의 공익위원 추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봤다.

이에 대해 이재갑 장관은 "2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고 지금은 공익위원의 공정성이 훨씬 중요한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며 "국회의 추천권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구간' 전문가가 정한다지만…공정성 논란 계속될 듯
결정위원회의 공익위원을 노·사·정이 추천하고 노·사의 순차 배제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나 이 또한 구간설정위원회 구성과 같은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방안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논란을 줄일 세부적인 장치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꿔도 노·사 대립 구도와 파행이 반복될 경우 절차만 복잡해지고 사회적 신뢰도는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최저임금 결정의 객관성을 담보할 구체적인 절차 등 '디테일'을 잘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결정위원회에 주요 노·사단체뿐 아니라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기업, 소상공인 대표도 포함하기로 한 것은 주요 노·사단체의 대표성 논란에 대한 대책으로 볼 수 있다.

현행 법규상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과 경영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추천권을 갖는데 이들 단체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와 소상공인 등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둘러싼 쟁점은 결정구조 외에도 한두 개가 아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가구생계비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방식은 비혼 단신 노동자의 생계비를 반영하는데 이는 노동자 생계비 지표로 한계가 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업종별·지역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해서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국가별로 다양하다.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중국, 베트남 등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미국과 브라질 등은 의회가 결정한다.

한국과 같이 별도의 위원회를 설치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국가는 일본, 영국, 독일, 러시아, 호주 등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