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30년 최저임금 준 사장은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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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겨우 준 봉제공장 사장
유시민 비판에 악플만 수백개
취약업종 현실 몰라서 하는 말"
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유시민 비판에 악플만 수백개
취약업종 현실 몰라서 하는 말"
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김동석 사장(59)은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열네 살 때 서울로 올라와 무교동 의상실에 취직했다. 미싱 시다(재봉틀 보조)로 시작해 의류 봉제 일을 한 지 45년째다. 그의 아내도 미싱공 출신이다. 중학교 졸업 후 시골에서 상경해 YH봉제공장에서 일을 배웠다. 두 사람은 결혼해 1989년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직원 네 명의 봉제공장을 열었다. 의류회사에서 디자인한 옷을 재단하고 봉제하는 공장이다.
직원이 23명으로 불어난 이 공장엔 김 사장 가족이 모두 나와 일한다. 부인은 아직도 재봉틀을 돌린다. 큰아들은 사무실에서, 둘째 아들은 생산라인에서 온갖 잡일을 다 한다. 김 사장도 영업을 뛰다가 공장에 들어가선 원단을 나른다. 네 가족이 매달려 있지만 이 공장은 수년째 적자다. 월 매출이 7000만원은 돼야 직원 월급 주고, 임차료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작년 이후 월 매출은 매번 5000만원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일감이 줄고 있어서다. 티셔츠 하나를 봉제하는 데 국내 공장의 공임(工賃)은 2500원이다. 베트남에선 800원이면 만든다. 국내 공장에 일감이 늘 리 없다. 작년부터는 최저임금까지 급격히 올라 경영압박이 심하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만 5억원이 넘는다.
직원들에겐 늘 미안하다. 최저임금에 맞춰 월급을 주는 직원은 30년 가까이 함께 일한 여섯 명뿐이다. 나머지 직원에겐 최저임금도 못 준다. 김 사장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다. 군말 없이 일해주는 직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사람들은 공장을 접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이 든 직원들 얼굴을 보면 그럴 수가 없다. 50, 60대 여성이 대부분인 직원들은 이 공장이 문을 닫으면 갈 곳이 없다. 김 사장은 “배운 거라곤 재봉틀 돌리는 거밖에 없고, 손은 자꾸 느려지는 저 직원들을 두고 어떻게 공장 문을 닫느냐”고 말한다. 그는 “소원이 있다면 평생을 바친 봉제공장을 쌩쌩 돌리며 직원들에게 한 달에 1000만원씩 봉급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김 사장이 졸지에 ‘악덕 사장’으로 유명해졌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주 jtbc 토론에서 언급한 ‘30년간 최저임금 준 사장’이 바로 그다. 유 이사장은 토론에서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30년 함께 일해온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는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 아니, 30년을 한 직장에서 데리고 일을 시켰는데 어떻게 30년 동안 최저임금을 줄 수가 있냐”고 했다.
이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관련 기사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밑바닥 노동자들의 고혈을 착취한 자는 누구냐’ ‘자기는 벤츠 타고 골프 치러 다니면서 최저임금도 안 주나’ ‘최저임금으로 버티는 사업자는 빨리 망해야 한다’는 등의 악플이 대부분이었다.
김 사장에게 기사 댓글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망하는 건 쉬운 줄 아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장을 폐업하면 당장 은행 빚부터 갚아야 하는데, 재산이라곤 20년 전 산 경기 구리시의 33평 아파트가 전부란다. 이 집을 팔아도 은행 대출 5억원을 다 갚지 못한다. 김 사장은 “우리 같은 봉제공장이 중랑구에만 1만 개를 넘는다. 내가 아는 사장들 90% 이상이 신용불량자다”고 전했다.
이런 취약업종은 봉제뿐만 아니다. 주조 금형 용접 등 소위 뿌리산업의 수많은 소기업이 비슷한 처지다. 이들을 도우려면 업종 특성에 맞게 인력과 설비 등 인프라를 지원해 경쟁력을 높여주든지, 아니면 이들 업종 종사자들이 다른 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새 산업을 키워줘야 한다.
업종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 최저임금 인상은 취약산업을 더 취약하게 할 뿐이다. 그 결과는 서민들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이게 불편한 진실이자 엄혹한 현실이다. 30년간 일한 직원에게 최저임금밖에 못 준 김 사장을 향해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chabs@hankyung.com
직원이 23명으로 불어난 이 공장엔 김 사장 가족이 모두 나와 일한다. 부인은 아직도 재봉틀을 돌린다. 큰아들은 사무실에서, 둘째 아들은 생산라인에서 온갖 잡일을 다 한다. 김 사장도 영업을 뛰다가 공장에 들어가선 원단을 나른다. 네 가족이 매달려 있지만 이 공장은 수년째 적자다. 월 매출이 7000만원은 돼야 직원 월급 주고, 임차료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작년 이후 월 매출은 매번 5000만원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일감이 줄고 있어서다. 티셔츠 하나를 봉제하는 데 국내 공장의 공임(工賃)은 2500원이다. 베트남에선 800원이면 만든다. 국내 공장에 일감이 늘 리 없다. 작년부터는 최저임금까지 급격히 올라 경영압박이 심하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만 5억원이 넘는다.
직원들에겐 늘 미안하다. 최저임금에 맞춰 월급을 주는 직원은 30년 가까이 함께 일한 여섯 명뿐이다. 나머지 직원에겐 최저임금도 못 준다. 김 사장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다. 군말 없이 일해주는 직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사람들은 공장을 접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이 든 직원들 얼굴을 보면 그럴 수가 없다. 50, 60대 여성이 대부분인 직원들은 이 공장이 문을 닫으면 갈 곳이 없다. 김 사장은 “배운 거라곤 재봉틀 돌리는 거밖에 없고, 손은 자꾸 느려지는 저 직원들을 두고 어떻게 공장 문을 닫느냐”고 말한다. 그는 “소원이 있다면 평생을 바친 봉제공장을 쌩쌩 돌리며 직원들에게 한 달에 1000만원씩 봉급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김 사장이 졸지에 ‘악덕 사장’으로 유명해졌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주 jtbc 토론에서 언급한 ‘30년간 최저임금 준 사장’이 바로 그다. 유 이사장은 토론에서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30년 함께 일해온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는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 아니, 30년을 한 직장에서 데리고 일을 시켰는데 어떻게 30년 동안 최저임금을 줄 수가 있냐”고 했다.
이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관련 기사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밑바닥 노동자들의 고혈을 착취한 자는 누구냐’ ‘자기는 벤츠 타고 골프 치러 다니면서 최저임금도 안 주나’ ‘최저임금으로 버티는 사업자는 빨리 망해야 한다’는 등의 악플이 대부분이었다.
김 사장에게 기사 댓글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망하는 건 쉬운 줄 아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장을 폐업하면 당장 은행 빚부터 갚아야 하는데, 재산이라곤 20년 전 산 경기 구리시의 33평 아파트가 전부란다. 이 집을 팔아도 은행 대출 5억원을 다 갚지 못한다. 김 사장은 “우리 같은 봉제공장이 중랑구에만 1만 개를 넘는다. 내가 아는 사장들 90% 이상이 신용불량자다”고 전했다.
이런 취약업종은 봉제뿐만 아니다. 주조 금형 용접 등 소위 뿌리산업의 수많은 소기업이 비슷한 처지다. 이들을 도우려면 업종 특성에 맞게 인력과 설비 등 인프라를 지원해 경쟁력을 높여주든지, 아니면 이들 업종 종사자들이 다른 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새 산업을 키워줘야 한다.
업종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 최저임금 인상은 취약산업을 더 취약하게 할 뿐이다. 그 결과는 서민들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이게 불편한 진실이자 엄혹한 현실이다. 30년간 일한 직원에게 최저임금밖에 못 준 김 사장을 향해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