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강성 親文'의 귀환…청와대 '입김' 더 세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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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진 개편
노영민 비서실장
대선때 문재인 캠프 조직본부장…홍영표 원내대표와도 돈독
기업 경영 독특한 이력…"경제 활력 불어넣을 적임자"
강기정 정무수석
운동권 출신·3선 국회의원…'親·反文 갈등' 때 '文 호위무사'
법안 날치기 시도때 몸싸움…대인관계·對野 협상력은 탁월
노영민 비서실장
대선때 문재인 캠프 조직본부장…홍영표 원내대표와도 돈독
기업 경영 독특한 이력…"경제 활력 불어넣을 적임자"
강기정 정무수석
운동권 출신·3선 국회의원…'親·反文 갈등' 때 '文 호위무사'
법안 날치기 시도때 몸싸움…대인관계·對野 협상력은 탁월
![< 청와대 2기 비서진 >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 두 번째)을 포함해 8일 새로 임명된 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들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 발표가 난 뒤 웃고 있다. 왼쪽부터 윤도한 신임 국민소통수석, 노 비서실장,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강기정 신임 정무수석, 조국 민정수석.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https://img.hankyung.com/photo/201901/AA.18648497.1.jpg)
돌고 돌아 ‘국정 2인자’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선임수석비서관 격인 정무수석에 임명된 노영민 주중 대사와 강기정 전 의원을 일컫는 말이다. 두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 승리한 직후부터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후보 각각 1순위에 올랐지만 ‘친문(친문재인) 성향’이 발목을 잡아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전병헌 전 정무수석이 한국e스포츠협회의 자금 유용 의혹으로 낙마했을 때도 ‘호출’을 받았지만 광주시장 출마를 이유로 고사하기도 했다.
노 신임 비서실장은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원조 친문’ 인사로 꼽힌다. 대선 국면에 영입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신(新)문’으로 불린 것과 달리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의 두 차례 대권 도전 때 후보 비서실장과 조직운영본부장으로 보좌했다. 정권 창출의 지분만 놓고 볼 때 여권에서 노 실장보다 앞선 이를 꼽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2·8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한 토론회에서 ‘주요 정치 현안을 누구와 상의하냐’는 질문을 받고 망설임 없이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노 실장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노 실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직을 맡은 2015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결제 단말기를 두고 상임위 산하기관에 시집을 강매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고향인 청주로 낙향했다.
강 신임 정무수석은 국회 입성 후 ‘정세균계’로 분류됐다. 2008년에는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강 수석은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낼 때 ‘당3역’ 중 하나인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발탁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정책위 의장에서 물러난 뒤 당이 친문과 반문 간 갈등으로 내분의 최정점에 달했을 때 ‘문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친문’ 이미지를 굳혔다. 특히 비문(비문재인)과 반문이 연합전선을 펴며 문 대통령의 당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데 맞서면서 친문그룹의 눈도장을 받는 동시에 반문그룹에 찍혀 공천에서 탈락하는 빌미가 됐다.
친문 정권엔 ‘양날의 칼’ 분석도
노 실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면서 기업을 경영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80년대 ‘현장’에서 전기 노동자로 활동하면서 전기기능기사 등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후 금강전기라는 회사를 설립해 약 10년간 경영했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고위공직자 주식백지신탁 시행에 따라 매각했다. 정치권에서 그를 ‘시장을 아는 운동권’으로 부르는 이유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노 실장을 소개하며 “국회에서 다년간 신성장 산업포럼을 이끌어 산업·경제계를 비롯한 각계 현장과의 네트워크 및 소통 능력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혁신적 포용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다질 최고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강 수석에겐 ‘폭력의원’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과거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기 전 법안 날치기 통과를 시도할 때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에 나서면서 상대 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 ‘몸싸움’ 하면 ‘강기정’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강 수석은 강성 이미지에 가려 있지만 대표적인 의회주의자로 만만찮은 협상력을 보여줬다. 정책위 의장 시절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호흡을 맞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강 수석이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공무원연금법 협상엔 어떤 연계 법안도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키지 않았다면 법안 통과는 불가능했다는 게 당시 원내지도부의 공통된 평가다. 초선이었던 전임 한병도 수석과 달리 3선 중진의원 출신으로 무게감도 있어 단순히 청와대의 ‘메신저’가 아니라 당·정·청 간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노영민 비서실장 약력
△1957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고 졸업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제17~19대 국회의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주중 대사
■강기정 정무수석 약력
△1964년 전남 고흥 출생
△광주 대동고 졸업
△전남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제17~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
손성태/김형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