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혁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지만 올해는 더 속도가 붙은 것 같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어제 개막한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를 본 국내 기업인들의 소회다. 지난해 CES가 모터쇼를 방불케 하는 자율주행차 잔치였다면, 올해는 더 업그레이드된 인공지능(AI)을 비롯해 로봇, 5G통신, 최첨단TV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융·복합의 향연이다. ‘미래를 보려면 CES를 보라’는 말 그대로다.

155개국 4500여 개 기업이 참가한 올해 CES는 세계 유수 전자·IT기업들이 더 똑똑해진 초연결 시대의 청사진을 펼쳐놨다. 기존 강자들은 AI와 5G의 시너지로 상상하지 못한 영역까지 눈앞에 보여주고, 화장품·스포츠 기업들까지 IT를 접목해 혁신에 혁신을 꾀한다. 업종·영역·기술 간 경쟁 칸막이가 사라져, 누구와 손잡든 최고가 되지 않고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러니 경쟁기업 간 ‘적과의 동침’, 전혀 다른 분야 간 합종연횡이 더 이상 신기한 일도 아니다.

미래기술 경쟁의 밑바탕에 플랫폼 전쟁이 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구글, 페이스북과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싸운다”고 토로했듯이, 국내 1위는 아무 소용없다. 기업들이 느끼는 절박함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 제조업이 위축되고, 서비스산업은 규제에 신음하는데, 4차 산업혁명에서도 밀리는 현실이 압축돼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초격차 경쟁에서 악전고투하는 기업들을 우리 사회가 격려해줘야 하는 이유다.

미래 판도를 좌우할 기술전쟁이 한창인데 국내 정치권과 정부의 인식 수준은 한가하기만 하다. 국민 혈세로 틈만 나면 외유성 출장을 나가는 정치인들이 글로벌 기술 격전장을 직접 관찰하고 미래 지향적 법·제도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를 본 적이 없다. 말로는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장관들도 하등 다를 게 없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해 기업의 손발을 묶고, 혁신에 족쇄를 채우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렇다고 스타트업을 제대로 키우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아니다. 스타트업들이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고도 규제를 견디다 못해 해외로 나가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돈만 지원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수준이다. 지금이라도 여야 국회의원과 장관들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세상의 변화를 실감해 보기 바란다. 자신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만 깨달아도 큰 소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