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완화 촉구하던 작년과 표현 사뭇 달라져 '주목'
"北은 비핵화-美는 상응조치…서로 해야 할 것 잘알고 있어"
전문가 "영변핵 국제 검증과 일부 제재완화 교환 논의될 듯"
문 대통령이 이날 밝힌 올해 외교안보 전략은 ‘주마가편(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의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고, 올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란 말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고 평화가 완전히 제도화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와 관련한 신년사는 매우 절제되고, 조심스러운 언어들로 채워졌다. 전체 발표 내용 중 말미에 배치된 데다 ‘북한’과 ‘비핵화’의 언급 횟수도 각각 3회, 2회에 그쳤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가야 하는 국면이라 돌출적인 새로운 얘기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11월8일 미·북 고위급 회담이 돌연 무산되기 전만 해도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및 비핵화에 관한 발언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작년 9월26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선 “지난 1년 한반도에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줬다”고 했다. 역사상 첫 미·북 정상의 만남을 중재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했다.
이날 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미·북 관계에 대해 좀 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좀 추상적인 합의에 머물렀기 때문에 2차 정상회담에서는 그에 대한 반성에 입각해 서로 구체적인 조치에 대해 보다 분명한 합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에 관한 ‘진짜 행동’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미국 조야의 의견과 비슷한 발언이다.
2차 미·북 회담에서 ‘담판’ 이뤄지나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만남은 ‘비핵화 담판’이 될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내다봤다. “미국과 북한 양쪽이 (무엇을 해야 할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은 국제 제재의 해제를 위해 분명한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미국도 상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오랜 세월 불신 탓에 서로 상대가 먼저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그 간극 때문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지금까지 미뤄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냉정한 현실 진단과 함께 문 대통령은 과거 북핵 협상과 달리 이번엔 최종적인 해결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강조했다. 정상 간 ‘톱 다운’ 외교를 통해 행동 대 행동을 통한 비핵화 해법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차관보급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신고한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만 벌이다 결국 실패하는 식의 패턴을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향후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대체적인 윤곽을 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장거리탄도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및 사찰 추진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상응조치를 내놨고, 이것이 정상회담 성사의 ‘모멘텀’이 됐을 것이란 얘기다.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선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국제검증 및 일부 제재완화의 교환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개념과는 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김 위원장의 비핵화는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반박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주한미군 및 유엔사 철수, 미국의 핵우산 철거와 연관시킬 수 있다는 질문에도 “북·미 간 비핵화 대화 속에 상응 조건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동휘/김채연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