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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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다이애나 듀서는 ‘잘 보존된 10년짜리’ 그릴 치즈 샌드위치를 경매에 내놔 2만8000달러에 팔았다. 10년 된 샌드위치는 뭐고, 이 엄청난 가격은 또 뭔가. 듀서는 샌드위치를 구운 프라이팬 자국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봤다고 주장했다. 이 샌드위치는 몇 년이 지나도 곰팡이 하나 피지 않았다는 듀서의 설명과 함께 ‘신성한 기념물’의 반열에 올랐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것이 진짜라고 믿었을까.

미국의 안과의사이자 인간지각 전문가인 브라이언 박서 와클러는 《지각지능》에서 “종교적 상상과 어릴 적 양육 방식, 자신의 신념체계가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필요성, 세상 만물의 질서를 종교로 설명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잘못된 지각지능(Perceptual Intelligence)이 비판적 사고의 버튼을 꺼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책마을] 착각이 눈을 가릴 땐, 샌드위치도 2만8000弗에 팔린다
여기서 지각지능(PI)이란 ‘환상과 실재를 구별하기 위해 경험을 해석하고 때로는 조작하는 방식’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오감은 서로 관련돼 있으며 뇌가 그것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지각이 달라진다. 수면부족 상태에서의 기억 왜곡과 지각의 혼란, 술을 마셨을 때 상대방이 실제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비어 고글(beer goggle) 현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편견과 오해, 착각과 오류, 환상과 망상, 자기기만 등 올바른 지각을 방해하고 공격하는 요인은 부지기수다. 달빛이 어스름한 밤에 숲길을 걷고 있는데 바람이 분다. 앞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며 다가온다. 달빛에 번쩍이는 것이 짐승의 털과 눈빛 같다. 모골이 송연한 채 확인해보니 검은 비닐봉지다. 어두워서 감각의 인식 작용이 부족한 틈을 공포가 끼어들어 지각을 방해한 결과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 한밤중 길바닥의 새끼줄을 뱀으로 오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착각은 수많은 형태와 방식으로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지각의 왜곡이다. 예컨대 ‘건강염려증’이라고 불리는 심기증 환자들은 자신의 PI를 왜곡하고 낮추는 커다란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심기증 환자였던 안데르센이 쓴 《벌거숭이 임금님》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옷이 실재한다고 믿었다. “예술은 진실을, 적어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라고 한 피카소의 말처럼, 훌륭한 연극은 관객의 PI를 자극하고 조작함으로써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심화시킨다.

지각지능은 스포츠와도 밀접하다. 공을 차기 전에 골대 크기를 똑같이 지각했던 두 집단이 공을 찬 뒤에는 딴소리를 한다. 골을 많이 넣지 못한 집단은 골대 폭을 처음보다 10% 좁게 지각했다. 반면 골을 많이 넣은 팀은 골대를 처음보다 10% 넓게 지각했다. 수행 능력에 따라 세계를 다르게 보게 되고 PI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운동선수들의 자기 시각화는 지각지능의 또 다른 면이다. 성공적인 수행 장면을 미리 상상하고 시각화함으로써 필요할 때 실제로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스포츠 팬들의 광적인 행동은 지나치게 고조된 감정으로 인해 PI가 왜곡된 결과다.

스타를 비롯한 셀럽(유명인사)들의 후광 효과도 경계 대상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커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유명인사는 보통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믿도록 조작되고, 이것이 후광 효과를 불러일으켜 PI를 방해한다.

극단적 신념이 빚어내는 종교적 광신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교(사이비) 집단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PI가 낮거나 아예 없는,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노린다”며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병사들에게 폭력을 부추겨 일으킨 십자군전쟁,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과격 이슬람 테러리즘을 예로 든다. 민주적 지도자보다 강력한 지도자를 선호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지각지능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푸틴 대통령과 그를 칭찬하고 감탄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태는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이 많은 위험 요인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지각지능을 높여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PI는 운전, 운동, 악기 연주와 마찬가지로 학습과 연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으며,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사고와 행동, 느낌의 이면에 숨은 것을 드러내는 열쇠다.

책의 말미에는 지각지능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20개의 사지선다형 질문이 수록돼 있다. 난생처음으로 요리한 닭고기 파이를 오븐에서 막 꺼냈는데 파이 껍질에 예수 얼굴이 찍혀 있는 것 같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릴까, 온라인 경매에 내놓을까, 바티칸에 연락할까. 저자가 제시하는 정답이 촌철살인이다. “식기 전에 먹는 것이 상책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