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협상 안되면 비상사태 선포" 배수진…백악관, 육군 공병단 예산 전용 검토
민주당 '장벽 뺀' 예산안 수용 촉구…"국민건강 희생하면서까지 반대하나" 반격
상원 '장벽예산-다카 존속' 맞교환 초당파적 대안 검토…펜스 "장벽없이 협상없다"
트럼프-민주 '강대강' 장벽대치…셧다운사태 '역대 최장기' 임박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문제를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의 '출구없는 대치'가 이어지면서 미국 워싱턴 정국이 극도의 경색국면을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로 예정된 다보스포럼 행사를 취소한 채 멕시코 국경장벽 현장을 직접 찾아가 "협상이 안되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고 '배수진'을 쳤고, 이에 민주당은 장벽 건설을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일째를 맞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는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역대 최장 기록(21일)을 깰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오후 멕시코 남부 접경인 텍사스주 매캘런과 리오그란데를 차례로 방문해 안보 담당자들과 만남을 갖고 국경순찰대 활동 현장을 시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매캘런 국경순찰대 사무실을 찾아 1시간여 동안 직원들과 함께 이민과 국경보안 문제에 관한 라운드테이블 논의에 참석했으며, 이어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리오그란데강 지역으로 이동해 경비 상황을 둘러보고 국경보안에 관한 브리핑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의 가장 신성한 의무는 국가를 지키는 것이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건 훨씬 쉬울 것"이라며 "우리는 장벽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힘을 합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이건 진정 국가 안보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어떠한 이유에서든 우리가 이것을(장벽건설 예산 합의) 해내지 못한다면 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또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그의 변호인단이 검토한 결과 장벽 건설에 필요한 예산을 조달할 수 있도록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해줬다면서 장벽 협상에 실패할 경우 국가비상사태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며 "아직 그럴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만약 그래야 한다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민주 '강대강' 장벽대치…셧다운사태 '역대 최장기' 임박
이와 관련, 백악관은 국경장벽 건설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육군 공병단에 재해복구지원 예산을 전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줄 것을 지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의회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AP통신도 백악관이 육군 공병단에 예산 전용 가능성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정부가 특히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139억달러 규모의 재해구호 기금 법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연방법에 따르면 긴급사태 발생 시 대통령은 군사용 건설 프로젝트를 중지하고 그 자금을 전용할 수 있다.

의회는 지난해 홍수 등 피해를 입은 푸에르토리코와 텍사스, 캘리포니아 및 플로리다 등지의 재해복구 프로젝트를 위한 예산을 승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에 글을 올려 셧다운 사태로 인해 이달 22∼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 참석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 간 협상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결렬된 상황을 거론하며 장벽협상 자체가 '연출용'이라는 주장을 펴며 맞섰다.
트럼프-민주 '강대강' 장벽대치…셧다운사태 '역대 최장기' 임박
펠로시 의장은 이날 열린 주간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어제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도록 사전에 계획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대통령이 장벽을 정말 원하는 것인지도 이젠 모르겠다.

그는 단지 장벽에 대한 논쟁을 원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확고한 지지자들을 겨냥,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는 등의 연출을 함으로써 일부러 정쟁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셧다운 장기화로 인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우선 경제와 금융 등 일부 기관 업무를 순차적으로 재개하는 법안에 대한 표결을 추진 중이며 이에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당론을 거슬러 찬성표를 던진 상태다.

펠로시 의장은 브리핑에서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법안에 대한)대답으로 '예스'를 택하라"고 촉구했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인의 건강과 안전, 행복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왜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당신들은 미국인에게 선서를 한 것이냐, 아니면 도널드 트럼프에게 선서를 한 것이냐"고 물었다.

펠로시 의장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의 대응방향을 묻자 직접적 답변을 피한 채 "대통령이 선포하고 나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악용하는데 대해 공화당 내에서 문제들에 직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등 여야 의회 지도부는 전날 백악관에서 회동했지만, 장벽예산에 대한 의견 차이만 확인하고 30여 분만에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57억 달러(6조4천억원) 규모의 장벽건설 예산편성을 고집하는 반면 민주당은 재고할 가치가 없는 생각이라 맞섰다.

이런 가운데 미국 상원을 중심으로 국경장벽 예산 확보와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제도(DACA·다카)' 존속을 맞교환하는 대안이 검토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카는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불법 이주한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청년들이 걱정 없이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한 행정명령으로, 최대 80만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9월 다카 폐지를 결정하고 6개월 유예기간을 주면서 의회에 대체 입법을 요청했으나 협상은 공전되고 있고, 이후 다카 폐지 정책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안을 내켜하지 않는다고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에 대한 대법원의 조치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대법원이 다카가 위헌적이라는 결론을 낼 것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어 "장벽 없이는 협상도 없다(No wall, no deal)"며 "우리는 강하고 견고하게 계속 서있을 것이다.

이제 민주당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시간"이라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경장벽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는 훨씬 더 넓은 이민정책을 갖고 싶다"며 "우리는 드리머(다카제도의 수혜자)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해, 대안 수용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언급을 해 주목된다.

지난해 12월 22일 0시부터 돌입한 연방정부 셧다운은 12일을 기점으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21일(1995년 12월 16일∼1996년 1월 5일)이었던 역대 최장 기록을 깰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셧다운은 부분 업무 중단이어서 약 75% 정도의 정부 예산은 편성이 된 상태이긴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피해 확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연방 공무원 80만 명이 일시적 휴직 등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인 신고나 이민 신청과 같은 대민 업무에서도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11일은 연방 공무원에 대한 올해 첫 급료 지급일로, 공무원들이 올해 첫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셧다운 사태로 일시 해고된 연방 공무원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이 10일 백악관 밖에 모여 일자리를 요구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