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해변·호이안 야경·후에 역사유적…베트남의 '3색 관광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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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베트남 중부도시 여행
베트남 중부도시 여행
베트남의 중부도시 다낭, 후에, 호이안은 볼거리도 많고 편안한 휴식도 있는 최고의 여행지다. 세 도시 모두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어 한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다낭은 매력적인 해변과 휴양이 있는 거점도시이고 호이안은 빛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색색의 등과 야경이 빼어나다. 역사문화도시 후에는 베트남의 뿌리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저마다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베트남 중부도시로 여행을 떠나보자.
오행산에서 바나힐까지 볼거리 풍성한 다낭
15세기까지 강성했던 참파 왕국의 거점이었던 다낭은 중부 최대의 상업도시이자 베트남 제3의 도시다. 다낭은 도둑, 문맹자, 극빈자, 거지, 마약 소지자가 없다고 해 예로부터 ‘5무(五無)’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10년 전 베트남을 방문했던 이들은 다낭의 놀라운 변모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단지 도시의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다. 해마다 1000만 명의 외국인이 찾는 도시인 만큼 취향을 자극하는 다양한 관광 콘텐츠로 채워졌고 감성까지 더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관광지는 대리석이 많이 나서 ‘마블마운틴’이라 불리는 오행산이다. 오행산은 지구의 다섯 요소인 물, 나무, 금, 땅, 불에서 이름을 따왔다. 동양의 오행사상에 기초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오행은 우주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며 오행을 거스르면 큰 재앙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또한 유명한 서유기의 손오공(제천대성)이 석가여래와 법력으로 대결하다 져서 바위에 500년 동안 갇힌 곳이기도 하다. 오행산은 다낭 시민에게 신앙의 땅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산의 곳곳에는 린응사를 비롯해 사찰과 다양한 모습을 한 부처상이 세워져 있다. 린응사는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만나 인도로 떠난 자리에 생겨난 절이라고 한다. 오행산은 특히 암푸동굴을 비롯한 다양한 동굴이 볼거리다. 암푸동굴은 오행산의 입구 쪽에 있는데 천당과 지옥 사후재판소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다낭의 또 다른 명소는 바나힐 국립공원이다. 해발 2000m를 케이블카로 20분간 이동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호텔, 카페, 놀이동산(자유이용권 포함)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으며 손 모양을 한 골든브리지는 특히 매력적이다. 바나힐은 다낭시에서 서쪽으로 약 42㎞ 떨어져 있으며 베트남의 또 다른 관광지인 달랏과 다낭 도심을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될 예정이다.
빛의 거리, 매력적인 소도시 호이안
참파왕조부터 17세기까지 인도 일본 중국 이슬람을 아우른 베트남 최고의 무역항이었으며 오랜 시간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인정돼 1999년 베트남에서는 세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호이안의 옛 거리(올드타운)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1953년 일본인들이 세운 내원교다. 당시 일본과 교역이 잦아 일본인 마을이 있었는데, 목조 지붕의 다리인 내원교가 그때의 역사를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붕이 있는 목조 다리는 거의 없어서 가치가 높은 다리이기도 하다. 내원교 근처에 있는 쩐가사당은 1802년 중국인 후손인 응우옌 왕조의 관리에 의해 선조에게 참배를 올리는 주거지이며 내부 장식은 일본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유품도 같이 전시돼 있다.
응우옌 왕조의 중심 도시 후에
후에는 1993년 베트남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802년 통일 베트남의 수도로 건설된 곳이며 1945년까지 응우옌 왕조 치하의 정치·문화·종교 중심지였다. 봉건시대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후에는 크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으며 현재 건물들을 보면 100년간의 프랑스 지배를 쉽게 알 수 있다.
후에의 왕궁은 중국 자금성, 한국 경복궁과 형태가 비슷하며 특히 자금성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폭격으로 많은 곳이 훼손됐으며 현재 복원 중이다. 또 흐엉강 옆으로 티엔무사원과 많은 능이 있는데, 카이딘왕릉의 화려함과 민망왕릉의 규모를 보면 그 당시 왕들의 힘을 알 수 있다.
글= 김하민 여행작가 ufo2044@gmail.com
사진=이민희 여행작가 travel@hankyung.com
오행산에서 바나힐까지 볼거리 풍성한 다낭
15세기까지 강성했던 참파 왕국의 거점이었던 다낭은 중부 최대의 상업도시이자 베트남 제3의 도시다. 다낭은 도둑, 문맹자, 극빈자, 거지, 마약 소지자가 없다고 해 예로부터 ‘5무(五無)’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10년 전 베트남을 방문했던 이들은 다낭의 놀라운 변모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단지 도시의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다. 해마다 1000만 명의 외국인이 찾는 도시인 만큼 취향을 자극하는 다양한 관광 콘텐츠로 채워졌고 감성까지 더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관광지는 대리석이 많이 나서 ‘마블마운틴’이라 불리는 오행산이다. 오행산은 지구의 다섯 요소인 물, 나무, 금, 땅, 불에서 이름을 따왔다. 동양의 오행사상에 기초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오행은 우주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며 오행을 거스르면 큰 재앙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또한 유명한 서유기의 손오공(제천대성)이 석가여래와 법력으로 대결하다 져서 바위에 500년 동안 갇힌 곳이기도 하다. 오행산은 다낭 시민에게 신앙의 땅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산의 곳곳에는 린응사를 비롯해 사찰과 다양한 모습을 한 부처상이 세워져 있다. 린응사는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만나 인도로 떠난 자리에 생겨난 절이라고 한다. 오행산은 특히 암푸동굴을 비롯한 다양한 동굴이 볼거리다. 암푸동굴은 오행산의 입구 쪽에 있는데 천당과 지옥 사후재판소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다낭의 또 다른 명소는 바나힐 국립공원이다. 해발 2000m를 케이블카로 20분간 이동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호텔, 카페, 놀이동산(자유이용권 포함)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으며 손 모양을 한 골든브리지는 특히 매력적이다. 바나힐은 다낭시에서 서쪽으로 약 42㎞ 떨어져 있으며 베트남의 또 다른 관광지인 달랏과 다낭 도심을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될 예정이다.
빛의 거리, 매력적인 소도시 호이안
참파왕조부터 17세기까지 인도 일본 중국 이슬람을 아우른 베트남 최고의 무역항이었으며 오랜 시간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인정돼 1999년 베트남에서는 세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호이안의 옛 거리(올드타운)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1953년 일본인들이 세운 내원교다. 당시 일본과 교역이 잦아 일본인 마을이 있었는데, 목조 지붕의 다리인 내원교가 그때의 역사를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붕이 있는 목조 다리는 거의 없어서 가치가 높은 다리이기도 하다. 내원교 근처에 있는 쩐가사당은 1802년 중국인 후손인 응우옌 왕조의 관리에 의해 선조에게 참배를 올리는 주거지이며 내부 장식은 일본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유품도 같이 전시돼 있다.
응우옌 왕조의 중심 도시 후에
후에는 1993년 베트남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802년 통일 베트남의 수도로 건설된 곳이며 1945년까지 응우옌 왕조 치하의 정치·문화·종교 중심지였다. 봉건시대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후에는 크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으며 현재 건물들을 보면 100년간의 프랑스 지배를 쉽게 알 수 있다.
후에의 왕궁은 중국 자금성, 한국 경복궁과 형태가 비슷하며 특히 자금성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폭격으로 많은 곳이 훼손됐으며 현재 복원 중이다. 또 흐엉강 옆으로 티엔무사원과 많은 능이 있는데, 카이딘왕릉의 화려함과 민망왕릉의 규모를 보면 그 당시 왕들의 힘을 알 수 있다.
글= 김하민 여행작가 ufo2044@gmail.com
사진=이민희 여행작가 trav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