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괴테도 놀란 '두 개의 거탑'…요리·와인이 넘쳐나는 美食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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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소도시 여행의 즐거움…이탈리아 볼로냐
소도시 여행의 즐거움…이탈리아 볼로냐
이탈리아를 여러 번 다녀온 여행자에게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으면 의외로 이름이 덜 알려진 소도시를 말할 때가 많다. 유명한 관광 도시를 벗어난 자그마한 도시들이야말로 이탈리아의 소박한 옛 풍경과 넉넉한 인심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정감 있는 소도시 가운데 그냥 지나치면 서운한 곳 중 하나가 중북부의 볼로냐(Bologna)다. 요리와 와인이 넘쳐나는 미식의 고장이자, 중세 시대 건축물이 눈을 사로잡는 문화유산의 도시다. 걸어서 둘러보기 좋고, 값싸고 훌륭한 레스토랑이 많으며, 숙박료도 싸서 여행자의 마음은 더욱 넉넉해진다. 소도시 여행만이 줄 수 있는 반짝이는 여유가 그곳에 숨어 있다.
본고장 요리 볼로네제 파스타
볼로냐를 둘러싼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 지방은 ‘푸드 밸리’라 불린다. 파르메산 치즈와 발사믹 식초의 본고장이고, 약발포성 레드 와인 람부르스코의 고향이다. 풍부한 요리를 만날 수 있으니 식도락가일수록 볼로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특히 베네치아에서 피렌체로 넘어갈 때 들르기 좋다.
볼로냐에 도착해 먼저 향한 곳은 1932년에 문을 연 레스토랑 겸 식료품점 탐부리니(Tamburini)다. 입구에서부터 풍성한 맛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쳐난다. 각종 생햄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갖가지 와인과 소스가 벽면을 차지하며, 고소하고 향긋한 향이 생동한다. 볼로냐 대표 요리인 볼로네제 파스타를 먼저 주문했다. 볼로네제 파스타는 다진 소고기와 토마토에 와인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 라구(ragu) 소스로 만든다. 보통 넓은 탈리아텔레 면에 버무려 먹거나 넓적한 라자냐로 만들어 먹는다. 본고장 와인 람부르스코도 곁들여 봤다. 입 안 가득 차는 파스타의 풍미와 보드라운 탄산이 감도는 붉은 빛 람부르스코가 여행의 시작을 기분 좋게 채운다.
볼로냐를 상징하는 두 개의 탑
볼로냐식 점심을 맛본 뒤엔 거리로 나섰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자 볼로냐를 상징하는 두 개의 탑인 아시넬리(Asinelli) 탑과 가리센다(Garisenda) 탑이 나란히 서 있다. 12세기 후반까지 볼로냐에는 귀족의 명성을 드러내거나 방위 목적으로 건설한 탑이 백수십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는 무수한 전쟁과 낙뢰를 견뎌낸 스무 개 정도만 남았는데, 나란히 서 있는 이 두 개의 탑은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97m 높이의 아시넬리 탑은 12세기 초 한 귀족 가문에 의해 세워졌다. 15세기에는 하단부에 요새가 둘러쳐졌고, 17세기에는 탑 안에 498개의 계단이 형성됐다. 지금도 이 계단을 통해 탑 꼭대기 전망대에 오를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 옆 48m의 가리센다 탑은 살짝 기울어져 있다. “마치 피사의 탑 같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기울어진 특징 덕분에 세계적인 문인들의 글에도 종종 등장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점착력이 강한 고급 시멘트와 철로 된 꺾쇠를 사용하면 이런 미친 짓 같은 물건도 만들 수가 있는가 보다”라고 다소 강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탑에서 이어지는 골목마다 붉은 지붕의 건축물이 즐비하고, 건물을 따라 주랑이 길게 이어진다. 여러 기둥이 지붕을 떠받친 형태의 주랑을 포르티코(portico)라고 부르는데, 보통 신전 같은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볼로냐의 경우는 옛 시가지의 건축물마다 이 주랑이 굽이굽이 이어져 볼거리로 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긴 주랑을 가진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붉은 기와지붕들과 잘 어울려 근사한 그림을 이룬다.
중세의 광장과 미완성의 성당
주랑들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 블록 지나니 마지오레(Maggiore) 광장이 나왔다. 수세기 동안 볼로냐의 중심을 지켜온 이 광장은 성당, 청사, 궁전들로 둘러싸여 있다. 당대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건축물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리석 외벽과 벽돌 지붕으로 된 산 페트로니오(San Petronio) 성당이다. 다른 중세 시대 성당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화려한 첨탑이 더해지는데, 이 성당은 단순한 벽돌 지붕으로 마감됐다.
본래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보다 큰 규모로 건설하려 했으나, 예산이 다른 궁전을 짓는 데 사용돼 규모가 줄었다고 한다. 결국 미완성의 성당으로 기록됐지만, 장식 없이 벽돌을 쌓아 올린 상층부의 무심한 매력이 오히려 뇌리에 각인된다. 그 옆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반키(Banchi) 궁전이 이어진다. 긴 전면부의 15개 아치가 가지런한 조형미를 드러내는데, 단정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대도시와는 달리 이 광장에는 상인이나 호객꾼이 없다. 저마다 광장의 주인이 되어 시간을 누리는 듯하다. 버스킹하는 가수들, 합주를 연습하는 학생들, 건물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꼬마들, 이방인인 여행자들까지도. 오후의 햇살이 광장 구석구석 골고루 물들어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따스하게.
볼로냐(이탈리아)=글·사진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여행 정보
인천에서 볼로냐로 가는 직항은 없다. 유럽 대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이탈리아 내에서 이동할 경우 고속열차 유로스타로 밀라노나 베네치아에서 약 1시간45분, 피렌체에서 약 1시간, 로마에서 약 2시간45분 걸린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는 반드시 ‘차량 출입 제한 구역(ZTL·Zona Traffico Limitato)’에 유의하자. 보행자의 안전과 시가지 환경을 위해 거주나 생계와 무관한 외부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는 제도다. 바닥이나 이정표에 ZTL 문구가 표시돼 있으면 출입할 수 없으니, 주변 주차장에 주차하도록 하자. 어기면 벌금이 부과된다. 그밖의 정보는 이탈리아관광청과 에밀리아로마냐관광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고장 요리 볼로네제 파스타
볼로냐를 둘러싼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 지방은 ‘푸드 밸리’라 불린다. 파르메산 치즈와 발사믹 식초의 본고장이고, 약발포성 레드 와인 람부르스코의 고향이다. 풍부한 요리를 만날 수 있으니 식도락가일수록 볼로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특히 베네치아에서 피렌체로 넘어갈 때 들르기 좋다.
볼로냐에 도착해 먼저 향한 곳은 1932년에 문을 연 레스토랑 겸 식료품점 탐부리니(Tamburini)다. 입구에서부터 풍성한 맛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쳐난다. 각종 생햄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갖가지 와인과 소스가 벽면을 차지하며, 고소하고 향긋한 향이 생동한다. 볼로냐 대표 요리인 볼로네제 파스타를 먼저 주문했다. 볼로네제 파스타는 다진 소고기와 토마토에 와인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 라구(ragu) 소스로 만든다. 보통 넓은 탈리아텔레 면에 버무려 먹거나 넓적한 라자냐로 만들어 먹는다. 본고장 와인 람부르스코도 곁들여 봤다. 입 안 가득 차는 파스타의 풍미와 보드라운 탄산이 감도는 붉은 빛 람부르스코가 여행의 시작을 기분 좋게 채운다.
볼로냐를 상징하는 두 개의 탑
볼로냐식 점심을 맛본 뒤엔 거리로 나섰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자 볼로냐를 상징하는 두 개의 탑인 아시넬리(Asinelli) 탑과 가리센다(Garisenda) 탑이 나란히 서 있다. 12세기 후반까지 볼로냐에는 귀족의 명성을 드러내거나 방위 목적으로 건설한 탑이 백수십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는 무수한 전쟁과 낙뢰를 견뎌낸 스무 개 정도만 남았는데, 나란히 서 있는 이 두 개의 탑은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97m 높이의 아시넬리 탑은 12세기 초 한 귀족 가문에 의해 세워졌다. 15세기에는 하단부에 요새가 둘러쳐졌고, 17세기에는 탑 안에 498개의 계단이 형성됐다. 지금도 이 계단을 통해 탑 꼭대기 전망대에 오를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 옆 48m의 가리센다 탑은 살짝 기울어져 있다. “마치 피사의 탑 같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기울어진 특징 덕분에 세계적인 문인들의 글에도 종종 등장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점착력이 강한 고급 시멘트와 철로 된 꺾쇠를 사용하면 이런 미친 짓 같은 물건도 만들 수가 있는가 보다”라고 다소 강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탑에서 이어지는 골목마다 붉은 지붕의 건축물이 즐비하고, 건물을 따라 주랑이 길게 이어진다. 여러 기둥이 지붕을 떠받친 형태의 주랑을 포르티코(portico)라고 부르는데, 보통 신전 같은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볼로냐의 경우는 옛 시가지의 건축물마다 이 주랑이 굽이굽이 이어져 볼거리로 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긴 주랑을 가진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붉은 기와지붕들과 잘 어울려 근사한 그림을 이룬다.
중세의 광장과 미완성의 성당
주랑들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 블록 지나니 마지오레(Maggiore) 광장이 나왔다. 수세기 동안 볼로냐의 중심을 지켜온 이 광장은 성당, 청사, 궁전들로 둘러싸여 있다. 당대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건축물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리석 외벽과 벽돌 지붕으로 된 산 페트로니오(San Petronio) 성당이다. 다른 중세 시대 성당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화려한 첨탑이 더해지는데, 이 성당은 단순한 벽돌 지붕으로 마감됐다.
본래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보다 큰 규모로 건설하려 했으나, 예산이 다른 궁전을 짓는 데 사용돼 규모가 줄었다고 한다. 결국 미완성의 성당으로 기록됐지만, 장식 없이 벽돌을 쌓아 올린 상층부의 무심한 매력이 오히려 뇌리에 각인된다. 그 옆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반키(Banchi) 궁전이 이어진다. 긴 전면부의 15개 아치가 가지런한 조형미를 드러내는데, 단정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대도시와는 달리 이 광장에는 상인이나 호객꾼이 없다. 저마다 광장의 주인이 되어 시간을 누리는 듯하다. 버스킹하는 가수들, 합주를 연습하는 학생들, 건물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꼬마들, 이방인인 여행자들까지도. 오후의 햇살이 광장 구석구석 골고루 물들어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따스하게.
볼로냐(이탈리아)=글·사진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여행 정보
인천에서 볼로냐로 가는 직항은 없다. 유럽 대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이탈리아 내에서 이동할 경우 고속열차 유로스타로 밀라노나 베네치아에서 약 1시간45분, 피렌체에서 약 1시간, 로마에서 약 2시간45분 걸린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는 반드시 ‘차량 출입 제한 구역(ZTL·Zona Traffico Limitato)’에 유의하자. 보행자의 안전과 시가지 환경을 위해 거주나 생계와 무관한 외부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는 제도다. 바닥이나 이정표에 ZTL 문구가 표시돼 있으면 출입할 수 없으니, 주변 주차장에 주차하도록 하자. 어기면 벌금이 부과된다. 그밖의 정보는 이탈리아관광청과 에밀리아로마냐관광청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