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애플의 '중국 역설'
새해 들어 주요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의 실적 악화에 따른 이른바 ‘어닝 쇼크’가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가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국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갈등을 이유로 지난해 4분기 실적 전망을 10% 정도 낮춰 잡은 것이 애플 주가 폭락의 도화선이 됐다. 삼성전자 역시 금년 1분기 실적 악화 전망을 내놨다. ‘대륙의 기적’으로도 불렸던 샤오미의 주가는 지난 8일부터 사흘 동안 17% 폭락했다. 미·중 무역갈등이나 중국경제 성장 둔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등의 거시경제적 요인만으로는 IT 거인들의 동반 추락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애플은 미국 본사가 제품 설계 등을 담당하고, 대만의 폭스콘이 주요 부품을 수입해 중국 대륙에서 위탁생산하는 3각 공급사슬을 구축했다. 판매가에서 매출원가를 뺀 애플의 마진율은 30%를 상회하는 수준이며, 위탁생산 기업 폭스콘의 마진과 중국의 임금 비중은 각각 3% 미만으로 알려졌다. 최종 조립생산기업 폭스콘은 애플 디자인에 특화된 부품 생산기업에는 독점적 구매자다. 세계 금융위기 등의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경우, 애플은 우월한 협상 지위를 통해 폭스콘의 마진율을 낮춘다. 폭스콘 역시 부품의 가격, 임금, 심지어 운송비까지 계약 가격을 낮춰 충격을 흡수한다. 폭스콘 그룹 내에서도 중국 각 지역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12개의 자회사 그룹이 원가 절감과 생산 효율성을 서로 경쟁하는 구도다.

이 같은 공급 구조는 애플을 세계 최대·최고의 IT 거인으로 키웠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황금알’을 낳기 위해서는 거위의 체질과 영양 공급이 원활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데 있다. 전설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기”를 조언했다. 애플의 ‘황금 거위’는 글로벌 공급사슬이 아니라, 바로 스티브 잡스의 이런 정신이었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제품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것은 단순히 새로운 하드웨어 때문이 아니다. 온라인과 결합한 소프트웨어의 혁신적 시스템을 하드웨어에 더해 소비 행태를 바꿔 놓은 앞선 생각이야말로 애플이 키웠던 진정한 거위였다. 위탁생산의 비대한 공급구조를 가지게 된 애플의 시장선도형 혁신 유전자는 약화됐고, 생산과 마케팅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단기 실적을 추구하는 영리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신제품 출시 주기를 관리해 이윤율을 유지하려 해도 창의력이 약화된 IT기업은 시들 수밖에 없다. IT산업의 생태계는 후발주자와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끊임없는 ‘의식 혁명’을 필요로 한다. 화웨이나 샤오미 같은 중국 기업이 짧은 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중국 정부의 지원과 함께 ‘모듈화’된 글로벌 IT제품 생산체계에 기인한다. 웬만한 IT기업은 통신, 정보처리, 카메라 기능의 구성 모듈을 구입해 조립한다면 하루아침에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될 수 있다. 저가 제품 출현과 품질 차이 축소로 인한 시장점유율 및 부가가치 하락으로 혁신 부재의 IT기업은 사양길에 들어선다.

단순히 제품 판매 부진이나 미·중 무역갈등에 대한 우려만으로 IT 거인들이 동시에 충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단기간의 이윤 규모로 최고경영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기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근시안적 시장 환경이 미래를 끌어가기 위한 ‘갈망과 우직함’을 고갈시켰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을 생산기지로 한 글로벌 공급사슬의 구축에 성공했던 기업들은 ‘황금알’에 취해 비대해진 거위의 체력이 약화되는 것을 간과했다. 중국 경제에 기대어 성장한 애플의 역설이다. 한·중 경제관계나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의 혁신 역량이 관건이다.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갈망과 우직함’을 키워낼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구축해 한국 경제는 ‘중국 역설’에서 자유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