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구내식당서, 저녁약속은 취소…수도권 이틀 연속 비상저감조치
서울시 광화문 일대서 공회전 차량 집중단속…경고·적발 잇따라
"기분도 잿빛" 종일 미세먼지와 '사투'…항공기 운항 차질도
"마스크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공기가 워낙 탁해서 기분까지 우중충해지네요."

수도권에서 이틀 내리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4일 오전 출근길,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정 모(42) 씨는 마스크를 쓴 채 직장으로 향하는 길에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는 "평소 미세먼지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심한 날은 아내가 꼭 쓰라고 챙겨 줘서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이틀 연속으로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되기는 작년 1월과 3월에 이어 이날이 세 번째다.

수도권을 포함해 부산, 대전, 세종, 충남 등 10개 시·도에 이날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기분도 잿빛" 종일 미세먼지와 '사투'…항공기 운항 차질도
추위가 닥치면 '롱패딩'이 유행하듯, 이날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쓰고 찌푸린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미처 마스크를 챙겨 나오지 않은 이들은 목도리로 코와 입을 감싸는 임시방편을 한 채 종종걸음을 쳤다.

지하철 2호선 아현역 인근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김 모(31) 씨는 "주말 내내 집에 있느라고 마스크를 사지 못했다.

지금 편의점에서 사야 한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오늘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

퇴근해서 빨리 샤워를 하고 싶다"고 푸념했다.

여의도에서 만난 이 모(26) 씨는 "요새 우리나라 겨울은 롱패딩 아니면 마스크가 하나는 꼭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추운 날엔 롱패딩 없으면 얼어 죽겠고, 날 풀리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날아오니 출근길이 매번 너무 힘들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김 모(45) 씨는 "주말 동안에 집에만 있었더니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며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사방이 희뿌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집으로 돌아가 마스크를 챙겨 출근했다"고 말했다.

북한산 인근에 사는 기자가 오전 6시께 집을 나서며 확인한 결과 평소에는 야간에도 뚜렷하던 산의 윤곽이 이날 출근길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시야가 나빴다.

용산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송 모(36) 씨는 "아침에 차를 몰고 잠수교를 건너는데 평소라면 조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지만 오늘은 휑하고 차만 다니더라"며 "출근하면서 하늘이 잿빛인 걸 보고 오늘은 점심 때도 나가지 말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상저감조치로 행정·공공기관 차량 2부제가 시행된 수도권에서는 2부제 대상차량을 무심코 몰고 나왔다가 진입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일부 발견됐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는 청사 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유아 동승차량과 장애인 차량, 민원인, 외부에서 회의차 온 차량 등 예외 대상을 제외하고 차량 끝자리가 홀수인 차량은 진입이 통제됐다.

청사 입구에서 근무하는 방호원은 예외 대상이 아닌 홀수차가 들어오려 하자 인근 세종문화회관 쪽을 가리키며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라"고 안내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짙은 안개에 미세먼지가 겹치면서 항공기 운항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25분 인천공항에는 저시정 1단계 경보가 발효됐으며 이어 오전 10시 15분께 저시정 경보는 2단계로 상향됐다.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이날 오전 9시 45분께 일본 간사이 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에 착륙 예정이던 항공편 1대가 김해공항으로 회항했다.

인천공항에 내려진 저시정 경보는 12시 10분께 해제됐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외부활동이 많은 업종 종사자들은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파트 단지 내 분리수거장에 마스크를 끼고 나온 최 모(37) 씨는 "6살짜리 아들이 계속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데, 공기가 이렇게 매캐해서 유치원도 못 보내지 않겠나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서구 한 아파트 단지 경비원 강 모(61) 씨는 "경비실에 마스크를 쌓아두고 동료끼리 나눠 쓴다"며 "재활용품 정리나 주변 청소 등 외부활동이 많은 우리 같은 일은 마스크 없이는 못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미세먼지에 따른 불편이 일상화하는 상황이 우려된다며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안국역 인근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장 모(56) 씨는 "어제와 오늘 괜히 목이 따갑고 가래도 심하다"며 "이런 상황이 일상이 되는 것 같아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계속 대책을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기분도 잿빛" 종일 미세먼지와 '사투'…항공기 운항 차질도
이날 서울시는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공회전 차량에 대한 단속과 계도에 나섰다.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 2명은 이날 오후 1시께 동화면세점 인근 주차장부터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을 거쳐 경복궁 주차장까지를 도보로 이동하며 집중 단속을 벌였다.

단속반원은 광화문 일대를 돌며 택시기사에게는 시동을 끈 채 승객을 기다려달라고 하는 등 약 10여대의 차량에 경고 조처를 내렸다.

특히 동화면세점 주차장과 경복궁 주차장 등은 '자동차 중점 공회전 제한장소'로 지정돼 이 장소에서는 경고 조치 없이 바로 공회전 시간을 측정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공회전 가능 시간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기온이 5도 이상 25도 미만일 경우 2분 이내 공회전이 허용된다.

또 기온이 0도 초과 5도 미만이거나, 25도 이상 30도 미만일 경우 5분 이내 공회전이 허용된다.

이날 오후 1시께 서울의 수은주는 약 4도를 가리켰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인근 상점 앞에 정차된 한 주류 적재 차량은 운전자가 자리를 비운 채 공회전을 하고 있어 단속반은 즉각 열화상 카메라로 배기가스 배출 여부를 확인한 뒤 시간을 측정했다.

하지만 약 3분이 지나자 운전사가 나타나 바로 차량을 이동해 과태료가 부과되지는 않았다.

또 경복궁 주차장에서도 한 관광버스가 시동을 켜 놓은 채 주차돼 있었다.

경복궁 주차장은 자동차 중점 공회전 제한장소로 단속반원은 바로 공회전 시간을 측정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하차한 버스 기사는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시동을 켜놓고 잠시 정차해둔 상태였다"며 바로 시동을 끈 뒤 승객들이 모두 승차하자 다시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떠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