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일제히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판매 감소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 등 친환경 미래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위주의 생산 인력을 구조조정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주요 완성차 업체가 동시다발적으로 군살 빼기에 들어갔지만 한국은 ‘다른 세상’이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14일 “한국에선 생산물량 일부를 다른 공장으로 옮기는 것조차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불황에 대비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은 꿈도 못 꾸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릴레이 감원 발표’를 주도한 곳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다. GM은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 늘었다고 발표한 지난해 11월1일 1만 명 이상의 인력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후 국내외 공장 7곳 폐쇄와 1만4000명 감원 등의 내용이 담긴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 전기차 보조금 삭감을 검토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했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글로벌 車기업, 사활 건 구조조정 나섰는데…'노조 리스크'로 옴짝달싹 못하는 한국
닛산자동차(1000명)와 폭스바겐(7000명), 재규어랜드로버(4500명) 등 다른 자동차 회사도 감원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지난 10일 유럽 공장 15곳에서 대규모 인력을 감축하고 차량 라인업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최대 2만5000명이 포드를 떠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실적 호전을 이어가고 있는 도요타도 임원을 55명에서 23명으로 줄이고, 상무·부장·차장 등을 ‘간부’ 직급으로 통폐합하기로 했다.

자동차 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경기침체 여파로 올해부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서다.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과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기술 발전으로 자동차 생산라인에 필요한 인력 수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GM은 30% 수준인 미래차 관련 인력 비중을 7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가장 필요한 국가로 한국을 꼽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글로벌 생산능력은 940만 대(연말 완공 예정인 기아차 인도공장 포함)에 달하지만 올해 판매량은 740만 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하지만 감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특정 자동차 모델의 판매가 급증해 다른 라인에서도 생산하려면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할 정도로 단체협약이 노조에 유리하게 돼 있다”며 “경영 판단에 따른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