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위원의 한국체육 진단
[체육계미투] "섬이 된 엘리트 체육…내재화된 시스템도 바꿔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용기로 한국 체육계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폭행·성폭행 피해 선수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국민적 관심은 커졌고,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 온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이참에 엘리트 중심인 한국체육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체육정책을 연구하는 남상우 위원은 우선 우리나라의 엘리트 중심 체육은 '경로 의존성'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남 위원은 "1970년대 국가홍보 차원에서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이후 생활체육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그러다 보니 고착화했다.

국민 의식의 변화만큼 체육계는 바뀌지 못했다.

이제 와 뒤늦게 바꾸려다 보니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체육계의 가장 큰 문제로는 '시스템 부재'를 들었다.

남 위원은 "있다고 해도 내재화돼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체육회를 감시하는 기구로 성격을 가지려면 체육회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서 "시스템이 안에 들어가 있다 보니 어떤 사안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는 등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내재화의 예로 '학교 운동부'를 꼽은 뒤 "운동부를 학교에 두니 학업과 운동 성적이 충돌한다.

시스템으로 학교 밖으로 빼야 한다"면서 지역 스포츠 클럽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체육계미투] "섬이 된 엘리트 체육…내재화된 시스템도 바꿔야"
많은 전문가가 엘리트 체육의 폐쇄성을 언급하곤 한다.

남 위원도 "'섬 문화', '실미도 문화'라 할 정도로 운동부 자체가 폐쇄적인 구조일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지내온 사람들이 나중에 결정권자, 즉 코치나 감독이 된다"면서 "그러다 보니 '바깥과 소통하면 운동이 안 되고 집중도 안 된다.

외부와 단절하고 운동만 열심히 해라' 이런 것이 당연시되고 반복된다.

'개방해라', '공부도 같이해라' 이런 건 안 통하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남 위원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저항하는 세력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모든 일이 그렇듯이 바꾸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과거처럼 또 흐지부지될 수 있다"면서 선수들의 희생으로 다시 어렵게 잡은 체육계 정상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고는 "국민체육진흥법 중심의 법이 스포츠기본법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관련법 정비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성적, 금메달 중심의 체육이 아닌 일상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체육이 중요하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체육계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부 폭로'라면서 "폐쇄된 것을 개방하고, 음지에 있던 것을 양지로 끌어내려면 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선수 개개인이 역할을 해줘야 하고 이들을 시스템으로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