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규제만능주의로는 포용성장 못한다
지난달 주요 언론에 보도된 2018년 추정 경제성적표를 보면 올해도 ‘포용적 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갈구하는 포용적 성장은 모든 부문이, 그리고 모든 국민이 골고루 성장하는 동반성장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추정 경제지표들은 부문 간 불균형은 물론 서민경제 어려움이 더 심화됐을 것이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지난해 수출은 6.1% 성장했는데 국내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각각 1.0%, 2.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내수 부문이 심각한 정체 상태에 빠져 내·외수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더구나 성장률마저도 목표치 3.0%에 못 미치는 2.6~2.7%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니 소득이 정체되면서 상대적으로 내수에 의존하는 서민경제가 이중으로 더 어려워진다는 경고인 것이다.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가 포용적 동반성장을 이루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 수출 제조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국내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수출을 늘린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내수 부문을 압박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원을 수출 제조업 부분에 집중하고,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정책을 펴면 내수 목적의 투자환경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져 자연히 내수 투자가 정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 기업들이 수출 수익을 국내 투자로 환원해 추가적으로 투자를 견인하면 압박받던 내수가 살아나면서 수출과 내수가 동반성장할 수 있게 된다.

내수가 살아난다는 것은 수출 제조업의 국내 투자가 증가하면서 중소 부품회사와 서비스업이 회생하고, 다시 중소기업 부문이 활성화되고, 고용이 늘어나고, 요식업 등 영세자영업이 살아나 경제의 모든 부문이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수출이 늘면 수출과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동반성장하면서 소위 모두가 행복한 포용적 동반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한국 경제가 1960~1980년대에 걸쳐 세계 최고의 포용적 동반성장을 할 수 있었던 기적의 비결이었고, 소위 ‘낙수효과’의 진수였다.

그러나 한국은 1990년대부터 소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규제한다면서 수출 제조 대기업의 국내 투자를 규제해왔다. 그러니 수출은 늘어났지만 이들이 해외에서 번 돈이 국내 재투자로 환원될 길을 잃고 해외 투자로, 그리고 외국 은행 금고 속으로 사라졌다. 포용적 동반성장을 가능케 한 낙수효과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다.

소위 ‘낙수효과의 약화’를 무슨 자본주의의 종말이 온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기업투자 규제 정책의 결과인 것이다. 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국내 투자의 발목을 잡아 내수는 오히려 정체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규제 정책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서민경제 입장에서는 수출은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된 셈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수출에서 국내 투자로의 선순환이 차단되면서 경제 부문 간 불균형은 물론 서민경제가 압박받아 국민들 간 포용적 동반성장 메커니즘이 계속 약화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런 잘못된 정책의 끝물을 보고 있는 셈이다. 각종 반(反)대기업 정책과 과도한 친(親)노조 정책은 주요 수출 대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말라붙게 하고 있다. 근로자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기업들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국내 투자가 늘어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수출과 내수 간 선순환 고리를 끊고서, 그리고 규제 위주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포용적 성장을 얘기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만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정책 기조 아래서는 수출 제조 대기업들이 해외 투자와 해외 생산기지는 늘려도 국내 투자는 기피할 것이기 때문에 수출은 늘지만 내수 침체는 지속돼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막을 수 없다. 내수 특히 서민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애써 수출해서 번 돈을 국내 고용이 아니라 해외 고용 증대에 쓰게 만드는 바보 같은 정책을 포용적 성장이니 소득주도성장이니 하는 구호로 호도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루빨리 기업들이 규모나 지역, 분야에 관계없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만이 경제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