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월16일 오후 4시16분

회계법인들이 작년보다 두 배가량 높은 보수로 기업들과 올해 외부감사 계약을 맺고 있다. 아직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은 ‘표준감사시간’ 도입을 가정하고 감사 시간과 시간당 보수를 대폭 높인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우려됐던 ‘감사보수 폭탄’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Y한영은 올해 한국전력과 외부감사인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간 50억원 이상의 감사보수(재무제표 감사 외 부수업무 포함)를 책정했다. 지난해까지 한국전력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삼정KPMG가 재무제표 감사보수 14억원 등 30억원 정도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두 배 가까이로 인상된 것이다.

삼일회계법인과 외부감사 계약을 연장한 동국제강은 7억5000만원에서 12억원 정도로 올해 감사보수가 높아졌다. 연 감사보수가 10억원 미만이던 한국석유공사에도 회계법인들이 30억원 수준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최근 계약을 맺는 기업들의 감사보수가 몇십%에서 많게는 두 배 넘게 뛰었다”며 “앞으로 단계적으로 적용될 표준감사시간과 내부회계관리 감사 등을 감안해 감사 시간을 대폭 늘린 데다 시간당 보수도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감사계약을 맺은 기업은 대부분 ‘표준감사시간 최종 확정 시 감사 시간과 보수는 달라질 수 있다’는 일종의 특약 조항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표준감사시간이란 적정 수준의 감사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 감사 시간을 제시한 가이드라인이다. 지난해 11월 시행된 신외감법에는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해 표준감사시간을 제정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한공회가 제시한 표준감사시간 제안에 기업들이 반발하면서 초안 확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도입을 목표로 논의돼온 표준감사시간이 확정되지 않다 보니 회계감사 현장에선 가격을 높이거나 특약을 걸고 계약을 맺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인력 운영이 빡빡해진 회계법인이 기업들을 가려서 계약하고 있는 것도 감사보수를 인상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계법인 간 영업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에선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이 감사보수를 ‘덤핑’해 부실 감사 우려가 제기됐지만 이제는 갑을관계가 뒤집혀 회계법인이 감사보수를 높여 부르고 있다”며 “신외감법의 첫 단추인 표준감사시간 문제를 잘 정리하지 않으면 기업들의 반발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