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한 연구원이 세균이 자란 배지에 항생제 후보물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한 연구원이 세균이 자란 배지에 항생제 후보물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2016년 발표된 영국의 ‘항생제내성대책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이후 세계적으로 한 해 1000만 명이 항생제 내성 세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고 11경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감염병은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 등이 인체에 침투해 이상을 일으키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 감염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전파된다.

병원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인류는 치료제를 계속 개발해왔다. 100세 시대가 온 것도 병원균과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 승리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플레밍이 개발한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로 인류는 대승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도에서 ‘NDM-1’이라는 유전자를 가진 세균처럼 모든 항생제가 무용지물인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각국 보건당국은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슈퍼박테리아가 생기는 이유

왜 갑자기 슈퍼박테리아가 나타났을까. 박테리아도 생명체라 외부의 다양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박테리아는 외부에서 갑자기 특별한 화학물질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항생제 공격에 대항해 박테리아는 세 가지 극복 방법을 만들어냈다. 먼저 세포 속으로 들어온 항생제를 빨리 밖으로 내보내는 분비시스템을 활성화한다. 또 항생제가 세포 속에 들어오더라도 이를 곧바로 분해해 무용지물로 만든다. 항생제가 공격하는 세포벽이나 세포벽을 생성하는 효소의 항생제 공격 포인트(분자 타깃)를 변형시켜 항생제가 들어오더라도 아무런 일을 못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슈퍼박테리아에 의한 국내 사망자 수는 아직 모른다. 정확한 숫자를 알기 위한 사업이 진행 중이다. 미국, 유럽 등 의료체계가 잘 구축된 나라는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을 일찍이 인지하고 가장 먼저 사망자 수를 집계했다. 슈퍼박테리아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건강한 사람의 변이 내성균 없애

배지에 세균을 배양한 모습.
배지에 세균을 배양한 모습.
슈퍼박테리아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게재된 한 논문은 사람의 변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유럽 요양병원 노인들에게 설사병을 유발하는 클로스트리이움 디피실이란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항생제를 사용했지만 내성균만 늘어나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의 변을 풀어서 먹였더니 80% 이상의 완치율을 보이고 재발하지 않았다. 6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 병원에서도 원하면 시술받을 수 있고 냄새만 빼면 이만큼 좋은 치료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지에 세균을 배양한 모습.
배지에 세균을 배양한 모습.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10년 동안 30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그러나 기껏 개발한 항생제가 시장에 나오고 3~4년 내 내성이 생기기 일쑤다. 이렇게 버려지는 항생제를 다시 이용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미생물학자들은 플레밍이 최초로 개발한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분해하는 효소를 다시 무력화하는 물질을 개발해 페니실린과 병용 투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201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한 논문은 토양칩이라는 획기적인 기술로 새로운 항생제인 텍소박틴을 개발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세균을 그대로 배양해 항생물질을 분리했다. 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국민, 기업, 국가 모두 나서야

국민, 기업,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30년 뒤에는 연간 3000만 명이 슈퍼박테리아로 사망하는 재앙을 피하기 힘들다. 개인은 손 씻기와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기업은 항생제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내성이 생겨 못 쓰게 되더라도 항생제 개발을 멈춘다면 재난은 더 빨리 우리를 덮칠 것이다.

슈퍼박테리아가 '슈퍼 재난'이 되기 전에 해야할 일
국가도 할 일이 많다. 2016년 8월 보건복지부가 국가항생제내성관리대책을 발표한 이후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하는 ‘원헬스 항생제 내성 과제’는 인체뿐 아니라 항생제 내성의 또 다른 원천인 동물을 포함해 포괄적인 모니터링 방안을 모색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국가 차원의 슈퍼박테리아 극복 로드맵이 필요하다. 슈퍼박테리아 문제는 흡사 ‘군대’나 ‘소방서’와 같다.

오늘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문제가 일단 발생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