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이 셧다운 정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허를 찔렀다. 1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보낸 한 통의 편지를 통해서다. 펠로시 의장은 편지에서 ‘이달 29일로 예정된 새해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을 셧다운 해제 이후로 미루거나 아니면 서면으로 대체하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로 황금시간대에 TV 생중계를 탈 기회를 차단하겠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국정연설 서면으로 하라”

펠로시 의장이 국정연설을 미루거나 서면으로 대체하자며 내세운 명분은 ‘경호 공백’이다. 사상 최장의 셧다운으로 대통령 경호 담당 부서도 영향을 받은만큼 ‘안전상’ 대통령이 직접 의회에 나와 연설하는건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연방정부 가동이 즉각 중단되는 현행 예산시스템이 도입된 1977년 이후 셧다운 기간에 대통령 국정연설이 이뤄진 전례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은 하원의장과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의 공동초정 형식으로 이뤄진다. 의회 의사당에서 상·하원 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이 새해 국정 방향을 제시한다. 연설은 미 동부시간 기준 TV 프라임타임인 오후 9시에 시작되며 주요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미디어 노출을 즐긴다. 펠로시의 편지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펠로시가 대통령의 TV를 치워버리고 있다”고 촌평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펠로시 의장의 편지에 대해 즉각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셧다운 안풀면 TV도 없다', 트럼프 허 찌른 펠로시
◆생활비 벌려고 우버 기사 뛰는 공무원도

연방정부 셧다운은 이날로 26일째다. 여전히 해결 기미는 안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 모두 ‘벼랑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연방공무원들은 ‘죽을 맛’이다. 셧다운으로 15개 부처 중 국무부, 상무부, 농림부, 교통부, 법무부 등 9개 부처와 20여개 산하기관이 영향을 받고 있다. 연방공무원 210만명 중 80만명이 사정권에 들었다. 이들은 셧다운 기간 급여를 못받고 있다. 이 중 38만명은 ‘일시해고’됐고, 42만명은 필수직군으로 분류돼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월급이 밀리면서 상당수 공무원들이 각종 대금을 연체하거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공무원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우버 드라이버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셧다운의 ‘쓴맛’을 봤다. 지난 14일 미 대학 미식축구 우승팀인 클렘슨타이거스 선수들과을 백악관으로 불러 축하만찬을 연 자리에서다. 셧다운으로 백악관 요리사들이 근무를 하지 않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푸드를 주문해 선수들을 대접해야 했다.

셧다운이 장기화되면서 민간부문의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 공항으로 꼽히는 애틀란타국제공항(하츠필드잭슨공항)은 보안검색이 평소보다 길어져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애틀랜타공항은 15일 트위터를 통해 여행객들에게 ‘보안검색 통과에 3시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알리기도 했다. 휴스턴국제공항(조지부시국제공항)은 5개 터미널 중 1개 터미널이 한때 폐쇄됐고, 워싱턴DC 관문인 덜레스국제공항과 마이애미국제공항에서도 보안검색이 차질을 빚었다. 보안검색을 책임지는 교통안전국(TSA) 직원들의 결근이 늘어난 결과다. 원래 교통안전국은 필수직군으로 분류돼 대부분 직원이 셧다운 기간에도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셧다운이 길어지면서 직장에 나오지 않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지난 월요일(15일) 결근율은 7.6%로 작년 같은 날(3.2%)의 두 배가 넘었다. 셧다운이 길어지면 여행객들의 불편이 더 커질 수 있다. 신약 인·허가, 기업공개(IPO), 신규 맥주 등록 등도 셧다운으로 타격을 입었다.


◆‘배보다 배꼽’으로 가는 셧다운

트럼프 행정부는 셧다운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 효과를 당초 ‘2주일마다 0.1%포인트’에서 ‘1주일마다 0.1%포인트’로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성장률 감소 효과를 계산할 때 공무원의 연봉 미지급분만 따졌지만, 민간 부문 손실이 커지자 계산 방식을 바꿨다고 한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11일 기준으로 지금까지 셧다운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36억달러에 달한다”며 “셧다운이 2주가량 더 이어지면 경제적 손실은 6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피해액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올해 국경장벽 예산(57억달러)에 가까워지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지표도 제 때 못 나오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주) 공장주문액과 무역수지 지표가 나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셧다운이 이달 30일까지 이어지면 작년 4분기 미 경제성장률(잠정치)도 안 나올 수 있다. 시장에선 경제지표 부족으로 ‘깜깜이 정책 결정’이나 ‘깜깜이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재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달 18일엔 연방지방법원 기금이 고갈된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형사소송을 제외한 민사소송은 중단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손실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일시 해고’된 연방 공무원 중 항공 안전, 식품의약품 검사, 세금 환급과 관련된 공무원 5만 명가량을 업무에 복귀시키고 있다. 하지만 월급도 못받는 공무원들이 제대로 업무에 집중하긴 힘들 것이란 회의론이 많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