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안쓰니 찾는 사람도 없어"…황금돼지해에도 재고만 쌓여
12년전 돼지해 하루 20만개 판매…올해는 적은 날엔 5000개 불과
인건비 상승과 중국산 저가 공세…모든 영세 중소기업의 고민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저금통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저축률의 급속한 하락 영향이었던 듯하다. 요즘은 현금을 받지 않는 ‘스타벅스 경제’의 확산으로 동전조차 만질 일이 없다.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은행에 가져갈 때는 눈치를 봐야 한다. 이런 시대에 국내에 유일한 돼지 저금통 제조업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기 파주로 차를 몰았다. 김종화 성도테크 대표(사진)를 만났다.
동전이 사라지는 시대의 저금통
황금돼지해인 올해는 저금통이 많이 나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되물었다. “혹시 동전 쓰세요?” 진짜 새해 들어 동전을 만져본 기억이 없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 대표는 곧장 창고로 안내했다.
출하를 기다리는 저금통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황금돼지해가 12년 만에 돌아왔지만 안 팔린다고 했다. “올해는 많이 팔리면 하루에 4만 개, 적게는 5000개 정도 나가요.”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이 팔릴 때는 하루에 20만 개를 팔았다. 한 달에 1000만 개를 거뜬히 팔기도 했다. 저금통 특수가 있는 1월부터 3월까지 장사해 1년을 먹고살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점차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
그는 힘들다고 했다. “요즘 현금을 안 받는 커피숍도 있고, 정부도 점점 현금을 쓰지 말라고 하고….” 작년에는 한 푼도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 저금통 가격은 그대로인데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는 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금통 판매가를 올릴 수도 없다. 중국산 때문이다. 성도테크는 지금도 300원에 저금통을 팔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다. 그는 1997년과 2004년을 얘기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부터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성도테크는 이듬해까지 이런 사람들에게 3000원짜리 돼지저금통을 팔았다. “공짜로 가져가고, 나중에 돈벌면 갚으라”며 나눠줬다. 동전 하나라도 저축해 함께 경제 위기의 고통을 이겨내자는 취지였다. 2004년에는 저금통이 엄청나게 잘나갔다. 인기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빨간 돼지저금통이 핵심 소품으로 쓰인 영향이었다. 김 대표는 “그때 날개 돋친 듯이 팔렸지요”라고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2004년 저축률은 7.4%나 됐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중 가장 높은 해였다. 12년 전인 2007년에도 반짝 특수가 있었다. 돼지해였다. 20여 명의 아르바이트를 써서 겨우 납기를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이 마지막 빨간 돼지저금통 특수였다.
“플라스틱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해봤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저금통 시장이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성도테크는 여러 가지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다 만들어봤지요”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2013년엔 좋은 결과도 있었다. 투명한 물병 ‘마이보틀’로 대박을 쳤다. 웬만한 집 부엌에 한두 개씩 있는 그 물병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일본인들이 병에 ‘내 물병’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걸 디자인 요소로 사용했다. 한 해에만 2억원어치가 팔렸다. 매년 디자인을 조금씩 바꿔 내놓는데 꾸준히 팔리는 효자 상품이다.
하지만 마진은 줄고 있다. 2013년 공장도 가격 1700원이던 500mL 물병이 올해는 1300원으로 떨어졌다. 중국산 경쟁제품 때문이다. 차별화할 만한 기술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 대부분은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다들 똑같이 힘든 거지요”라고 했다. 영세기업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인력을 붙들어 놓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최근 화장품 용기를 만들어 보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쉽지 않지만 해봐야지요”라고 말했다.
인건비 및 원자재 가격 인상, 시대적 변화,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 등 국내 유일의 돼지 저금통 제조업체는 이 모든 악재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파주=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