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재정 투입이 요구되는 사업의 경제성 등을 판단하기 위해 도입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면제해 달라는 목소리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지난해 말 17개 시·도마다 2~3개씩 신청한 예타 면제 사업을 검토 중인 가운데,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광역별로 1건 정도는 선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더욱 불이 붙은 형국이다. 이러다 예타를 도입한 취지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부가 남북 교류협력, 재난예방, 지역 균형발전 등 이런저런 예타 면제 요건을 열거한 게 발단이 됐다. 지자체마다 ‘사생결단식’으로 예타 면제를 요구하면서 그 이유로 들고 있는 게 균형발전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이 없더라도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니 무조건 국비를 지원해 달라는 논리라면 앞으로 지역 사업들 가운데 예타를 받을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면제 사업을 놓고 광역별 최소 1개씩이라는 방침도 그렇다. 면제에도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지 정치적 나눠먹기로 갈 바엔 예타 제도의 존재 이유가 없다.

물론 서울이나 수도권 사업의 경우 예타 통과가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인구가 적은 지방의 사업은 경제성 등에서 불리해 예타 통과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철도 등 교통은 그 성격이 다른데 일정 규모 이상 사업은 모두 예타를 거치게 하는 획일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예타 평가항목의 보완이나 가중치의 조정, 예타 대상 사업비 기준의 다양화 등으로 해결해야지, 면제로 풀려고 들면 끝이 없다.

예타를 도입한 배경에는 재정의 효율적 관리와 함께 정치적 압력 차단이란 목적도 있었다. 정부는 면제 사업 선정을 계기로 예타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예타 면제가 ‘원칙’이 되고 예타 적용이 ‘예외’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표를 의식한 지역사업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 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예타마저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되면, 국민의 혈세 누수는 누가 책임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