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시장 한파에…애널리스트 수 줄고 연봉도 '뚝'
이른바 잘나가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속속 떠나고 있다. 항공·물류업 분야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꼽혀온 신민석 전 케이프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최근 행동주의 펀드 케이씨지아이(KCGI)의 최고투자책임자(CIO) 겸 부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KCGI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과 물류회사 한진의 주요 주주에 오르면서 화제가 된 펀드다.

기계, 조선, 전기장비 섹터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불리던 성기종 전 미래에셋대우 연구위원은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 IR 총괄임원(상무)으로 영입됐다. 스몰캡 부문을 다루던 김병기 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증권가를 떠나 제이준코스메틱 IR담당 이사로 새 일을 맡았다.

◆1년 만에 50명 넘게 짐 싸

이른바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던 애널리스트 수가 급감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애널리스트(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금융투자분석사 기준) 숫자는 18일 현재 1009명이다. 작년 말 1013명에서 한달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4명이 짐을 쌌다. 2017년 말(1064명)과 비교하면 55명 줄었다. 2016년 말 1125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애널리스트 숫자는 2017년 이후 매년 크게 감소하는 추세다.

애널리스트들의 월급봉투도 얇아졌다. 수억원대 연봉은 옛 말이 됐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주요 종목의 최상급 애널리스트의 연봉이 10억원을 웃돌았으나 지금은 10년차 이상 팀장급 베스트 애널리스트도 2억~3억원 수준에 머문다.

한 팀장급 애널리스트는 "리서치센터장도 5억~7억원 수준에 그쳐 10년 전 부·차장급 연봉에도 못미친다"며 "신규 애널리스트의 경우에는 10년 전 6000만~7000만원에 육박하던 연봉이 현재는 4000만~5000만원 수준에 그친다"고 전했다.

◆펀드 시장 부진에 애널리스트 '된서리'

애널리스트들이 입지가 줄어들 게 된 데에는 장기화하는 증권시장의 불황 탓이다. 특히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이 장기간 침체되면서 리서치센터가 주로 뒷받침하는 법인영업부가 위축된 영향이 크다.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경제전망을 비롯해 산업과 기업 관련 보고서를 내는 것은 더 많은 주문을 따내기 위함이다. 주식을 대량으로 매매하는 자산운용사, 연기금, 보험사 등이 주된 타깃이다. 과거 주식형 펀드 붐이 일었을 때에는 국내외 기관을 상대로 주문을 받아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 애널리스트가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2008넌 이후 국내 증시에서 기관투자자의 큰 축인 펀드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주식형 펀드 시장은 2008년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이다. 국내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2011년말 100조원을 돌파했다 매년 감소해 지난해 연말기준 59조5000억원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펀드에서 돈이 꾸준히 빠져나가고 운용사 규모가 쪼그라들자 이른바 비용 부서로 불리는 리서치센터 조직이 부담스런 존재가 된 것이다.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리서치센터의 규모를 줄이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박현주 회장의 전략에 따라 국내 주식부문 인력을 축소하는 움직임이다. 회사 차원에서 리서치 인력들이 자산관리(WM), 투자은행(IB) 영업을 지원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삼성증권도 장석훈 대표 취임 후 첫 조직개편에서부터 리서치센터를 전략투자센터로 통합해 비중을 축소했다. 주요 수익 창출원인 자산관리본부는 리테일부문으로 승격해 역량을 높이는 대신 비용부서인 리서치센터의 힘은 상대적으로 줄였다. 하나금융투자 등은 리서치센터를 수익 부서로 변모시키며 랩어카운트 상품 등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펀드시장 위축으로 수수료 규모가 줄고 있으며 이베스트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지점 없는 증권사 늘면서 수수료 자체도 낮아지는 추세"라며 "법인영업 자체가 구조적으로 좋지 않아 애널리스트의 입지가 예전처럼 높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