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는 지역경제에 큰 도움" vs "사용처 제한된 상품권에 불과"
“상품권이 지역화폐인가요. 하여간 최근 들어 상품권 사용이 늘긴 했죠. 그렇지만 매출이 늘지는 않았어요. 이전에 현금 또는 카드를 쓰던 손님들이 상품권으로 바꾼 거죠.”

지난 16일 오전 경기 시흥시 정왕시장에 있는 한 채소가게 상인은 ‘시루’가 도입된 뒤 매출이 늘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시루는 시흥시가 지난해 9월 도입한 지역상품권이다.

같은 날 오후 경기 성남시 태평동에 있는 중앙시장. 이곳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전통시장이어서 10명 중 6명이 성남상품권을 쓸 정도로 사용빈도가 높다”면서도 “상인들은 대부분 상품권을 다시 쓰지 않고 은행에서 현금으로 환급받는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와 시흥시를 비롯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120여 곳이 지역상품권 등 지역화폐 도입에 나선 가운데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지역화폐가 지역 경기 활성화라는 당초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선 발행 및 유통량과 관련한 정확한 수요예측과 함께 지역 밖에서 기업과 관광객 등 새로운 수요를 유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경제적 효과 입증 어려운 지역화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지난해 초 강원 춘천시와 화천군, 양구군 등 세 곳을 대상으로 지역상품권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소상공인들의 2017년 평균소득이 상품권 도입 전인 2013년과 비교해 0.1~2.1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건 이 연구가 유일하다.

하지만 춘천과 화천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자체라는 점을 감안해 관광객 수 증가로 소비가 늘어 소상공인의 소득이 증가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역화폐를 도입해 지역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는 좋다”면서도 “실질적인 효과는 아직까지 통계가 없어 계량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당초 지역 밖에서 이뤄지던 소비를 지역 내로 끌어들이거나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당초부터 지역에서 이뤄지던 소비가 현금 및 카드에서 상품권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시흥시 신천동의 한 청과물가게 주인은 “매일 한두 명은 시루로 계산을 한다”면서도 “그런데 그 손님들은 원래 우리 가게를 찾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역화폐가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일회성 소비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에게 받은 지역화폐를 다시 쓰지 않고 현금으로 찾는다는 게 대다수 상인의 설명이다. 성남 모란시장에서 기름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애초 재료를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업종의 경우 상품권을 지역 내에서 다시 쓸 이유가 없다”며 “내가 알기론 여기 상인 열 명 중 열 명 모두 현금으로 바로 환급한다”고 했다.

현금깡 및 예산낭비 우려도

"지역화폐는 지역경제에 큰 도움" vs "사용처 제한된 상품권에 불과"
일부 지자체에서는 부실한 수요예측으로 발행 규모 대비 유통량이 저조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원도는 2017년부터 830억원 상당의 상품권을 발행했지만 유통액은 569억원에 그쳤다. 이마저도 전체 유통액의 83%는 공공기관이 매입했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주민들이 지역화폐로 지역에서 소비하더라도 소상공인들은 다른 지역에서 재료를 사오기 때문에 현금으로 환급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 같은 시대에 소비를 좁은 한 지역으로 국한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지역화폐를 과다 발행할 경우 ‘현금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역화폐는 액면가보다 5~10% 할인된 수준에 살 수 있다. 온라인에선 이보다 더욱 할인된 가격에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지자체 납세액 및 인구 규모 등에 비례하도록 하는 등 한도를 설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더욱이 광역 지자체까지 자체적으로 지역화폐를 대규모로 발행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던 기초 지자체의 지역화폐가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민으로선 상대적으로 가맹점 수가 많은 광역 지자체의 지역화폐를 선호할 수밖에 없어서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도 기초 지자체 단위의 지역화폐 발행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강원도에 이어 인천시와 광주시도 연내 지역화폐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무분별한 지역화폐 난립으로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세금 낭비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5~10% 할인받아 구매하는데 이 5~10%를 지자체가 예산으로 지원해준다. 이 교수는 “지역경기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업과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라며 “경제활성화는 거래가 많아져야 효율적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박진우/이인혁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