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7월12일 한국무역보험공사 빌딩에서 긴급 민관 합동회의를 열었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한국 등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를 예고한 데 따른 대책회의였다. 회의에 참석한 자동차·전자·철강 등 수출업계 관계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위협’이 수개월 전 시작됐는데도 ‘뒷북 대응’에 나섰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고 있는데 통상교섭본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통상본부 1급 4명중 3명 '이탈'…통상 파고 거센데, 조직은 '위태'
고위직 줄사표에 통상본부 ‘뒤숭숭’

통상교섭본부 내부에 이상 조짐이 보인 건 작년 봄부터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과정 때 내부 팀워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산업부 안팎에 파다했다. 통상 분야에 밝은 한 인사는 “통상팀이 작년 초 미국 워싱턴DC에 협상하러 갔을 때 김현종 본부장과 실무자들 간에 마찰이 빚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이후 팀워크가 사실상 무너졌다는 얘기가 들렸다”고 했다.

김 본부장이 통상교섭본부 내부 인사에 직접 관여하면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인사권을 놓고 불화설에 휩싸인 적도 있다. 무역투자실장, 통상협력국장, 신통상질서정책관, 경제자유무역기획단장 등 통상본부 내 주요 보직이 작년 6~7개월 공석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후문이다.

이 와중에 통상본부 1급 네 명 중 유명희 통상교섭실장, 김창규 신통상전략실장, 김선민 무역투자실장 등 세 명이 최근 들어 통상본부를 떠나거나 사의를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상 교섭은 경험과 전문성이 다른 분야보다 훨씬 많이 필요한 분야”라며 “수십 년간 외길을 걸어온 통상 전문가들이 한꺼번에 떠나면 공백을 메우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외부 통상 전문가들조차 이런 문제를 감지하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교섭 민간자문회의만 해도 통상당국이 답을 정해 놓고 오거나 형식적으로만 참석한 지 오래됐다”며 “실무자들의 재량권이 크게 축소된 것도 간부 이탈을 부채질하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호무역주의 파고에 속수무책

통상본부 조직이 흔들리면서 현안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작년 7~10월 터키와 캐나다, 유럽연합(EU)에서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당했다. 터키 등은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었다. 국내 업체들엔 직전 3년간의 평균 수출액보다 더 많이 판매할 수 없다는 ‘족쇄’가 채워졌다. EU의 경우 잠정조치 후 5개월간의 협상 기간이 있었지만, 이달 초 수입규제 품목을 3종 확대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되레 국내 기업에 불리해진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통상본부가 “적절한 보상이 없을 경우 EU에 보복 조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상황을 되돌리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해외에서 한국을 상대로 규제하는 수입제한 건수도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수입규제 건수는 2016년 138건이었지만 2017년 154건, 작년 184건으로 급증했다. 이 중 미국의 수입규제는 2016년 18건에서 작년 36건으로 두 배 뛰었다. 통상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기업에 불리한 모든 가용 정보(AFA: Adverse Facts Available)’ 규정을 이용해 한국 기업에 100% 넘는 관세 폭탄을 때리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 한·미 FTA 개정안에 AFA를 견제할 장치를 넣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조사 과정의 투명성 제고’ 정도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게 수출업체들의 설명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에 따라 자동차 관세가 부과될 수 있는 데다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완충 장치 없는 EU 탈퇴) 가능성까지 대두돼서다. 중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해 반도체 반독점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으로 꼽혀온 수출마저 연초부터 급감하고 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제 규모면 다양한 통상 이슈를 동시에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요즘 국내 통상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조재길/서민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