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詩와 삶
기대와 포부가 컸던 법과대학 시절에는 시(詩)가 크게 생각되지 않았다. 한참 앞을 보고 뛰어야 할 그때는 시의 글귀와 정서를 수세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다고 할까. 아름다운 시편을 떠올리기에는 시대가 너무 거칠었다. 1970~1980년대는 머리칼이 길어도, 치마가 짧아도, 목소리를 높여도 안 되는 시절이 아니었던가. 1990년대도 만만치 않았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시집을 펼칠 만한 시대가 됐다. 내 나이 또한 그렇게 됐나 보다. 시대와 나이의 허락으로 비로소 시집을 펼친다.

프랑스의 가톨릭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시 ‘마티스’는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하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짓게 한다. ‘거리에서 바람에 도르르 말리는 종이, 과일의 투명함, 낡은 계단의 곰팡이도, 위대한 화가들에 의하여 하늘에서 소환된 번개만큼이나 우리에게 영혼과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 준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아주 잊지는 말았으면 하는 헛된 희망을 품고 공주님의 결혼식 날 밤, 공주님에게 우리의 이름을 전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이름을 아주 잊지는 말았으면~.’ 이 구절은 읽는 이를 점잖게 위무한다. ‘공주님의 결혼식 날 밤, 공주님에게~’로 시작되는 부분은 우리 젊은 날의 연모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한편 ‘칼을 베고 누워 제후가 된 꿈을 꾼다’는 이하(李賀)의 당(唐) 시선은 중년의 감성을 흔든다. 북송 소동파(蘇東坡)의 시 ‘정풍파(定風波)’는 맑고 상쾌하다. ‘숲을 뚫고 잎 때리는 빗소리 들을 것 없다. 시 읊으며 천천히 거닌들 어떠랴. 대지팡이와 짚신이 말 탄 것보다 가벼우니 무엇이 두려우랴. 도롱이 쓰고 안개비에 한평생 살아가리.’ 정치적으로 불우해 좌천을 거듭하고 10년을 유배지에서 보냈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좌절하지 않은 낙천주의자인 그의 시는 늘 원숙하다. “세상일은 한바탕 큰 꿈이니, 인생은 얼마나 처량하던가”라고 읊던 그는 비록 배가 불룩 나와 몸맵시가 없었지만, 진정한 품격을 잃지 않았기에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이 아닐까. “몸매보다는 문장이다…” 하며 웃어 본다.

변호사들은 복잡한 법률문제와 감정 충돌이 얽힌 송사에 매달리다 보면 자칫 건조한 마음이 되기 쉽다. 재판하랴, 의뢰인과 상담하랴, 위원회에 참석하랴 늘 시간에 쫓긴다. 세상에 그 어떤 직업이 쉽겠냐마는 변호사 일은 점점 더 치열해짐을 느낀다.

그런 ‘직업’과 ‘천직’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잠깐 다시 두터운 시전집을 펼친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김규동 ‘당부’) 이 친근한 시편이 저녁 책상에 평온함을 던지며 마음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제 호기심 많은 변호사의 분주한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