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자 A씨가 경찰에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제보자 제공]
신고자 A씨가 경찰에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제보자 제공]
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자 한 승객이 몰래 112 신고를 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누가 신고했냐'며 물어보고 별다른 조치 없이 철수한 일로 경찰이 뭇매를 맞고 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신고자 보호 못했다는 주장있는데 대상자가 칼을 들고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 알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원 청장은 "소란행위로 갔는데 신고자가 누군가 확인한 것 같다"라면서 "신고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은 잘못했다"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원 청장은 "신고자 입장에서는 누구지 드러나지 않길 원했는데 신고자 누군지 확인하니까 황당했던 거 같다"면서 "신고자 누군지 몰라서 찾은 것이지만 앞으로는 신고자에 대해 비밀 보장 될 수 있도록 교육 강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시스템 오류로 112신고 상황실과 현장 경찰관 간에 상황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원 청장은 "2012년에 (문자 수신이) 40여자 정도로 제한이 됐다"라면서 "지난해부터 보강을 하려고 했는데 완결이 안된 상태에서 이번 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한 달 내로 본청에서 보완할 계획이다"라고 해명했다.

현장 출동 경찰이 상황 파악하는 게 문자 밖에 없느냐는 질문에는 "112 신고는 급박한 신고이기 때문에 길게 문자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40자 넘는 부분이 들어오지 않은 거 같다. 빠른 시일 내 개선되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경찰과 신고자 등에 따르면 19일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앞을 지나던 마을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수차례 허공에 휘둘렀다. 이 남성은 다른 승객들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마라"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

버스에 타고 있던 A씨는 이 모습을 보고 "파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욕설하며 커터칼을 들고 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112에 신고했다.

A씨는 "다음 정류장에서 경찰관들이 버스에 올라 '신고자 계십니까?'라고 큰소리로 외쳤다"며 "해당 남성이 자리를 이동해 제 옆자리에 앉아 대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고자를 찾지 못한 경찰이 버스에서 내리자 A씨는 곧바로 뒤따라 내려 자신이 신고자임을 밝히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제야 경찰은 해당 남성을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그러나 간단히 신원 확인만 하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112 신고 문자 시스템의 오류로 '남성이 흉기를 들고 있다'는 신고 내용이 현장 경찰관에게 전달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또 A씨가 '우리가 신고한 걸 모르게 해 달라'고 보낸 문자도 현장 경찰관들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흉기를 소지했던 남성은 현장 조사 뒤 귀가했다. 경찰 측은 "'칼이 있다'는 말만으로는 임의동행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해당 남성을 돌려보냈다"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은 "경찰은 난동 부린 사람 안잡고 오히려 신고한 사람을 찾으면 어쩌자는 건가", "보복 당할까바 신고도 못하겠네", "신고자께서 저렇게 디테일하게 신고를 했는데 이건 무슨 '짜장면 시키신 분'도 아니고" 등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