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북한의 핵동결에 초점을 맞춰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조건으로 대북 제재를 완화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9일 “북한이 핵연료와 핵무기 생산을 동결할지가 북한과 논의 중인 한 가지 주제”라고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비핵화는 긴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그동안에는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해 동결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는 유지하되 미국이 최대 위협으로 느끼는 핵과 ICBM 능력 ‘동결’을 중간 목표로 설정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이 같은 협상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치적’과도 연관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2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길 고대한다”며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재차 드러냈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 2년간의 치적을 정리한 자료에서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시간은 북한에 유리하다”며 “시간에 쫓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의 성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정은은 중국을 든든한 후원자로 두면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느긋한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은 21일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조·중(북·중) 친선은 오늘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중국과의 친선 관계를 강조했다. 북한 예술대표단은 23일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를 앞두고 베이징에서 공연을 한다. 북·중 간 밀착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이 중국과의 공조를 대미 압박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와 ICBM 폐기를 대가로 개성공단 가동·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일부 제재를 완화해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1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핵프로그램은 그대로 작동되고 있다”며 “미국이 북한에 동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핵동결이 길어지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장기간 용인하는 것으로 이어져 한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동결하더라도 철저한 사찰·검증과 결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북이 동결을 중간 지점으로 놓고 협상했을 때 미국은 동결이 비핵화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