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닮아가는 日 기업…'구조조정 전투' 거치며 새 몬스터로 환골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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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박상준 와세다大 교수
대기업 R&D 비용, 일본의 절반
한국 기업도 스스로 '힘' 키워야
대기업 R&D 비용, 일본의 절반
한국 기업도 스스로 '힘' 키워야
최근 일본이 구인난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자주 나오면서 일본 경제가 정말로 좋아진 것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전되고 있는 나라에서 지금 이 정도 경기라면 좋아진 것이 사실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일본 경제는 어떻게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 지금과 같은 활력을 되찾은 것일까. 지난 5년간의 정부 정책이 경기회복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경제가 살아난 가장 근본적 요인은 일본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거듭된 구조조정과 사업전환을 통해 더 강인한 생명력을 얻었다. 그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의 몬스터가 전투와 전투를 거듭한 끝에 새로운 몬스터로 환골탈태하는 것처럼 그렇게 진화했다.
정부 정책은 사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을 뿐 기업활동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제품을 내놓는 기업은 죽은 제갈량이 경제사령탑으로 부활한다 하더라도 구제할 수 없을 터다. 제아무리 좋은 정책적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전투에서 피를 흘리더라도 한번 도전해 보겠다는 근성이 결핍된 기업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 생존할 수 없다.
최근 한국의 경기가 둔화하면서 지나치게 정부 정책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기업가정신은 등한시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일본은 다시 달아나고 있고, 중국은 무섭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진화하지 않는 기업이 설 자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비 수치를 보면 과연 지금의 위기상황을 얼마나 엄중히 인식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를 보면 2016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는 4.2%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과 독일은 3% 안팎으로 한국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수치는 정부 지원금과 극히 일부 대기업의 막대한 연구개발비로 인한 착시에 불과하다. 우선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담 연구개발비는 1%로 이 역시 독일의 0.8%나 일본의 0.5%를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기업의 연구개발비만 보면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 컨설팅 기업인 PwC가 발표한 ‘연구개발비에 따른 기업 순위’를 보면 상위 1000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은 34개사인데 일본 기업은 161개사가 포함돼 있다. 한국 34개사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는 3.4%인 데 비해 일본 161개사는 4.3%로 더 높게 나온다. PwC 순위에서 세계 4위를 기록한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본은 가장 순위가 높은 도요타자동차를 제외해도 4.3% 수준에서 별 변화가 없다. 자동차 업종만을 비교해 보면 현대자동차의 경우 매출은 닛산이나 혼다와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연구개발비는 경쟁 기업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한국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최소한 일본의 경쟁 기업에 비해 부족한 점은 없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봤으면 한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교수(54)는 대표적인 ‘일본통’ 학자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를,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산업연구원과 일본국제대를 거쳐 2005년부터 와세다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거시경제 비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한국 경제에의 시사점》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시장의 변화와 진출전략》 《불황터널: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