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차별화된 아름다움 고집
기존 디자이너와 협업보다 색다른 분야와의 만남 중시
아시아 시장이 작년 매출의 절반
한국도 年 두자릿수 이상 성장…까다롭고 성숙한 시장
로랑 도르데 에르메스 시계부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지난 17일 제네바 스위스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기자와 만나 “에르메스 하면 시계를 떠올리게 하는 게 나의 과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시계를 전혀 디자인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신제품을 맡기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시계 디자이너와 협업 안 해”
도르데 CEO는 대학 졸업 후 1991년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을 거쳐 1995년 에르메스 재무부서에 입사하면서 에르메스와 인연을 맺었다. 그 뒤 텍스타일, 고급 가죽, 특수가죽 등 여러 부문을 거치며 에르메스 각 사업부를 총괄해왔다.
그는 2015년 시계부문 CEO를 맡은 뒤 100% 자체 제조한 고급 가죽 스트랩을 사용하는 ‘럭셔리 여성시계’를 추구해왔다. 도르데 CEO는 “1978년 에르메스가 스위스에 시계 자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에르메스는 최고의 품질을 고집했다”며 “절대 기존의 시계 디자이너와 협업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이때부터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에르메스의 전통과 기술력은 살리되 디자인은 앙리 도리니, 필립 무케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온 배경이다.
올해 선보이는 ‘갤롭 데르메스’ 시계도 이니 아르키봉 디자이너가 개발한 제품이다. 아르키봉은 환경디자인을 전공한 설치미술가로 조명, 건축 등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그가 시계를 디자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의 원형, 사각형과 차별화된 시계를 내놓기 위해 위는 둥그스름하게, 아래는 네모나게 시계 다이얼을 제작했다.
올해 또 다른 주력 제품인 ‘아쏘 레흐 드라룬’을 착용한 도르데 CEO는 “프랑스 브랜드의 창의성과 예술성, 100% 스위스에서 생산하는 시계 브랜드로서의 기술력을 모두 갖춘 게 에르메스 시계”라고 말했다.
현재 에르메스 매출의 절반 이상이 가죽제품에서 나온다. 의류, 실크, 향수가 뒤를 잇고 뒤늦게 시작한 시계는 2.7%로 가장 비중이 낮다. 도르데 CEO는 “우리는 특정 연령대나 지역을 겨냥한 제품을 선보이진 않는다”면서도 “아시아 특히 한국의 성장세가 매우 높은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빠르게 성장하는 중요한 시장”
최근 발표한 에르메스의 지난해 상반기 매출은 28억5340만유로(약 3조6700억원)로,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4억1760만유로(약 1조8200억원)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나왔다. 국가별, 대륙별 실적은 공개하지 않지만 에르메스 시계부문 매출도 아시아가 절반을 차지한다. 특히 한국에서 시계는 2012년 사업을 시작한 뒤 해마다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도르데 CEO는 “한국이 정확히 몇 위인지 말할 순 없지만 시계부문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 나라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며 “한국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품질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까다로운 눈높이를 가진 성숙한 시장”이라고 했다.
에르메스는 여성시계와 함께 남성시계도 강화할 계획이다. 도르데 CEO는 “에르메스는 전통적 시계 강자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여성시계 브랜드”라며 “다만 앞으로는 남성을 위한 기계식 시계도 해마다 2~3개씩은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패션 하우스에서 만든 시계치고는 잘 만들었다는 수준에서 그치면 안 된다”며 “슬림 데르메스, 갤롭 데르메스 같은 새로운 시계를 지금도 열심히 개발 중이니 기대해달라”고 덧붙였다.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