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6개월 동안 한국에서 7800억원대 가격담합을 저질러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 피해를 끼친 일본 콘덴서업체 4곳에 검찰이 벌금 4억원을 구형했다. 가격담합에 대한 법정 최고형(벌금)이 미국의 0.17%에 불과한 현 공정거래법으론 ‘시장경제의 암(癌)’으로 불리는 카르텔(가격담합)을 없애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800억대 국제 카르텔에 벌금 고작 4억? 도마위에 오른 담합 형량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구상엽)는 7800억원대 가격담합을 저지른 일본 4개 업체에 벌금 4억원, 회사 임원 1명에 벌금 2000만원을 구형하고 전원 불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10월 검찰에 고발한 4개 업체는 세계 알루미늄 콘덴서 시장점유율 1위(약 17%)인 일본케미콘을 포함해 비쉐이폴리텍, 마쓰오전기, 엘나 등이다. 이들은 2000년 7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국내 휴대폰, TV, 컴퓨터 등 전자제품의 부품으로 쓰이는 콘덴서를 7864억원어치 수출하며 공급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국내 콘덴서 시장의 과반 점유율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 피해를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의 가격담합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도 포착돼 제재가 이뤄졌으나 형사처벌을 인정한 것은 한국과 미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르텔에 대한 지나치게 낮은 형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일본케미콘은 이번 사건으로 미국에서 벌금 676억원을 부과받고 관련자들은 징역 등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한국(검찰)은 법정 최고형으로도 2억원을 구형할 수밖에 없었다. 관련자가 혐의를 인정해 구속은 피했다. 담합에 대한 법정 최고형은 미국이 징역 10년, 벌금 1억달러(1127억원)인 반면 한국은 징역 3년, 벌금 2억원으로 차이가 크다.

임용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카르텔은 공정 경쟁을 해쳐 시장 경제에서 가장 암적인 요소로 불리기 때문에 한국도 국제수준으로 형량을 높여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검찰 기소 명단엔 담합 협의가 있는 콘덴서업체 7곳은 제외됐다. 공정위 단계에서 공소시효가 만료돼 고발 조차 못한 것이다. 공정위가 검찰에 이번 사건을 고발한 시점은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3개월(오는 24일 만료) 앞둔 작년 10월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3개월이라는 촉박한 기한내 수사를 마무리짓기위해 주임검사 뿐만 아니라 구상엽 부장검사와 수사관 등 공정거래조사부 수사 인력을 대거 투입해야했다.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담합 사건은 작년 상반기 24건으로 이 가운데 19건(79%)은 시효가 6개월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담합사건이 아직도 많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공정위와 검찰간 형사집행 관련 정보공유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