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재개발 행정에 혼란 가중…"을지면옥이 다가 아닌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울시, 2006년 구역 지정 후 2009·2014년에 이어 올해 다시 재검토
생활유산 뒤늦게 파악…"보존해야" vs "예정대로" 갈등 확산 서울시가 23일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검토 안은 을지면옥을 비롯한 오래된 맛집과 공구업 등 도심산업은 보존하고, 진행이 더딘 정비구역은 개발을 중단하는 게 골자다.
이제라도 문화·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산 보존에 나섰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10년 이상 추진된 재개발 사업에 또다시 '메스'를 대는 것을 두고 여론에 떠밀린 '뒷북 처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 비판 여론에 또 다시 재검토 카드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올해 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계획 변경이 결정된다면 2009년과 2014년에 이어 세번째다.
서울시가 전면 재검토에 나선 배경에는 을지면옥으로 불거진 비판 여론 외에 행정상 허점이 있었다.
서울시는 2015년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을 보존 가치가 있는 생활유산으로 지정했던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재정비를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맹훈 도시재생실장은 "재개발 계획은 꾸준히 재검토해왔지만, 구체적 점포와 관련한 사항은 올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1일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한 인터뷰에 "자세한 내용은 이번 사건을 경험하면서 보게 됐는데 오래된 가게를 배려하는 것이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을지면옥이 있는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는 오세훈 전 시장 재임 당시인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재개발이 진행됐다.
서울시는 애초 세운상가 좌우로 길게 이어진 지역을 8개 구역으로 나눠 전면 철거한 후 재개발할 계획이었으나 박원순 시장 재임 후인 2014년 171개 중·소규모 구역으로 나눠 점진적으로 정비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가장 면적이 컸던 세운3구역은 10개 소구역으로 쪼갰다.
이 중 공구상이 밀집한 3-1·4·5 구역은 작년 10월 관리처분인가가 나면서 12월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시행사인 한호건설은 이곳에 최고 26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을지면옥, 안성집 등 유명 맛집이 있는 3-2 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보상 협의가 진행 중이다.
보상이 완료되면 관리처분인가를 거쳐 철거가 이뤄진다. 하지만 을지면옥을 비롯한 이 일대 땅 소유주 14명은 재개발에 반발하며 2017년 7월 중구청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사업시행인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양대창 전문점 양미옥이 있는 3-3 구역은 작년 12월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다.
이런 사실이 최근에야 뒤늦게 조명받으며 오래된 옛 골목을 허물고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철거식 재개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서울시는 지난 16일 부랴부랴 재개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결국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유명 노포들은 보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상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철거를 막는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철거를 위한 관리처분인가를 내주지 않거나 정비구역을 재조정해 해당 점포를 제외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아직 진행이 더딘 인근 수표 도시환경정비구역은 개발 중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0년 정비구역에 지정된 이 구역은 작년 12월에야 중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으나 임차 상인의 반발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2023년 연면적 11만8천㎡ 규모의 지하 5층, 지상 24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 "을지면옥이 다가 아닌데…" 찬·반 논란 가중
서울시의 재검토 방침은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재개발 찬성과 반대 측은 이날 나란히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서울시에 추가 대책을 요구했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인과 예술가들이 조직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발표를 환영하지만 세운3구역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청계천 상가는 일제강점기부터 조성된 하나의 유기체"라며 "현 개발 계획은 팔, 다리를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개발에 찬성해온 세운3구역 토지주연합은 "재개발이 절차대로 진행돼온 만큼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대 시설이 노후해 안전과 위생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1950∼1960년대부터 상가들이 생겨나 수십년 이상 된 점포들이 많다. 서울시가 나서 소상공인도 아닌, 업주들을 보호하는 게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집회를 연 두 단체 모두 "을지면옥이 다가 아니다"라며 노포 등 특정 업주에 치우친 대책을 비판했다.
특히 을지면옥과 같은 생활유산은 원칙적으로 현 자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업주가 이전을 원하면 서울시가 막을 방법은 없다.
서울시의 보호 아래 최대한 영업을 하다가 보상이 완료되면 이전을 할 수도 있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전 단계에서 불만이 제기돼 계획이 늦어지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이들의 재산권에 피해가 간다"며 "옛것과 새것을 공존하게 하면서 논의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생활유산 뒤늦게 파악…"보존해야" vs "예정대로" 갈등 확산 서울시가 23일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검토 안은 을지면옥을 비롯한 오래된 맛집과 공구업 등 도심산업은 보존하고, 진행이 더딘 정비구역은 개발을 중단하는 게 골자다.
이제라도 문화·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산 보존에 나섰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10년 이상 추진된 재개발 사업에 또다시 '메스'를 대는 것을 두고 여론에 떠밀린 '뒷북 처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 비판 여론에 또 다시 재검토 카드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올해 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계획 변경이 결정된다면 2009년과 2014년에 이어 세번째다.
서울시가 전면 재검토에 나선 배경에는 을지면옥으로 불거진 비판 여론 외에 행정상 허점이 있었다.
서울시는 2015년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을 보존 가치가 있는 생활유산으로 지정했던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재정비를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맹훈 도시재생실장은 "재개발 계획은 꾸준히 재검토해왔지만, 구체적 점포와 관련한 사항은 올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1일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한 인터뷰에 "자세한 내용은 이번 사건을 경험하면서 보게 됐는데 오래된 가게를 배려하는 것이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을지면옥이 있는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는 오세훈 전 시장 재임 당시인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재개발이 진행됐다.
서울시는 애초 세운상가 좌우로 길게 이어진 지역을 8개 구역으로 나눠 전면 철거한 후 재개발할 계획이었으나 박원순 시장 재임 후인 2014년 171개 중·소규모 구역으로 나눠 점진적으로 정비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가장 면적이 컸던 세운3구역은 10개 소구역으로 쪼갰다.
이 중 공구상이 밀집한 3-1·4·5 구역은 작년 10월 관리처분인가가 나면서 12월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시행사인 한호건설은 이곳에 최고 26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을지면옥, 안성집 등 유명 맛집이 있는 3-2 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보상 협의가 진행 중이다.
보상이 완료되면 관리처분인가를 거쳐 철거가 이뤄진다. 하지만 을지면옥을 비롯한 이 일대 땅 소유주 14명은 재개발에 반발하며 2017년 7월 중구청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사업시행인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양대창 전문점 양미옥이 있는 3-3 구역은 작년 12월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다.
이런 사실이 최근에야 뒤늦게 조명받으며 오래된 옛 골목을 허물고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철거식 재개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서울시는 지난 16일 부랴부랴 재개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결국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유명 노포들은 보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상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철거를 막는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철거를 위한 관리처분인가를 내주지 않거나 정비구역을 재조정해 해당 점포를 제외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아직 진행이 더딘 인근 수표 도시환경정비구역은 개발 중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0년 정비구역에 지정된 이 구역은 작년 12월에야 중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으나 임차 상인의 반발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2023년 연면적 11만8천㎡ 규모의 지하 5층, 지상 24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 "을지면옥이 다가 아닌데…" 찬·반 논란 가중
서울시의 재검토 방침은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재개발 찬성과 반대 측은 이날 나란히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서울시에 추가 대책을 요구했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인과 예술가들이 조직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발표를 환영하지만 세운3구역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청계천 상가는 일제강점기부터 조성된 하나의 유기체"라며 "현 개발 계획은 팔, 다리를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개발에 찬성해온 세운3구역 토지주연합은 "재개발이 절차대로 진행돼온 만큼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대 시설이 노후해 안전과 위생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1950∼1960년대부터 상가들이 생겨나 수십년 이상 된 점포들이 많다. 서울시가 나서 소상공인도 아닌, 업주들을 보호하는 게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집회를 연 두 단체 모두 "을지면옥이 다가 아니다"라며 노포 등 특정 업주에 치우친 대책을 비판했다.
특히 을지면옥과 같은 생활유산은 원칙적으로 현 자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업주가 이전을 원하면 서울시가 막을 방법은 없다.
서울시의 보호 아래 최대한 영업을 하다가 보상이 완료되면 이전을 할 수도 있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전 단계에서 불만이 제기돼 계획이 늦어지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이들의 재산권에 피해가 간다"며 "옛것과 새것을 공존하게 하면서 논의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