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자라’ 같은 브랜드가 1년에 12번씩 하고 있다. 버켄스탁은 패션보다 본질적인 면에 집중하고 싶다.”

1774년 독일의 한 신발 장인의 손에서 시작된 샌들 제조업체 버켄스탁은 올해 창립 245년을 맞았다. 두 세기 넘는 역사가 깃든 이 신발은 미국과 유럽, 일본의 패션 피플 사이에서 가장 ‘핫’한 고급 샌들 브랜드 중 하나다. 버켄스탁은 ‘발이 가진 본연의 기능을 보호하는 가장 편안한 신발을 만든다’는 고유의 장인 정신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 덕분에 유행이 급변하는 패션계에서도 20~30대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에게 고루 인기를 얻으며 어떤 브랜드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버켄스탁은 2013년 마커스 벤스버그와 올리버 라이헤르트의 ‘두 톱’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재편된 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의 협업 요청이 많지만 “버켄스탁의 기본 철학은 패션이 아니라 기능성”이라며 이 같은 철학에 맞지 않으면 모두 거절하고 있다.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19세기 독일 목욕탕에서 신던 신발

버켄스탁이란 이름은 창립자인 요한 아담 버켄스탁의 성에서 따왔다. 그는 교회의 신발공이었다. 이후 대를 이어 가족기업으로 운영하면서 최고 명성의 샌들을 내놨다.

요한 아담 버켄스탁의 손자인 콘래드 버켄스탁은 할아버지가 시작한 가업을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유럽인과 부유한 미국인들이 독일에 목욕탕 관광 오는 것을 보고 프랑크푸르트에 두 개의 공장을 설립해 샌들을 제작했다. 19세기 말 버켄스탁은 독일 목욕탕에서 신는 신발로 유명해졌다.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콘래드는 프랑크푸르트 한 병원의 정형외과 워크숍에 참가하게 됐고 그 뒤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한 신발을 만들게 됐다. 이용자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버켄스탁의 장점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버켄스탁이 지금과 같은 디자인을 갖게 된 것은 콘래드의 아들 칼 버켄스탁이 회사를 이끈 이후다. 1960년대 초 그는 ‘애리조나’ ‘마드리드’ 등 세 개 모델을 선보였다. 이 모델들은 지금까지도 버켄스탁의 베스트셀러 모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버켄스탁은 1967년부터 미국 등 해외로도 뻗어나갔다. 독일에서 휴가를 보내다 발을 다쳤던 한 미국인 사업가가 버켄스탁을 사용한 뒤 매료돼 신발을 미국으로 수입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업계 등 장시간 서서 일하는 근로자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독일 건강용품 가게에서나 팔리던 신발은 미국에서 데일리 슈즈가 됐다.

2013년 외부 영입한 공동 CEO 체제 전환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은 것은 2013년부터다. 버켄스탁 가문이 경영권 문제를 놓고 다툼을 벌이면서 소유권은 가족이 갖되 외부 인사에게 CEO를 맡기기로 하면서다. 마커스 벤스버그와 올리버 라이헤르트가 공동 글로벌 CEO에 올랐다. 벤스버그 CEO는 버켄스탁에서 오래 근무해 왔지만 라이헤르트 CEO는 버켄스탁의 자문역을 맡은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파격 인사였다. 이전까지 독일 방송국의 마케팅 담당자였던 라이헤르트는 30년 넘게 버켄스탁을 애용했다는 것을 빼면 신발과 제조업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라이헤르트 CEO는 “버켄스탁을 잠자는 거인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취임 직후 2020년까지 2000만 켤레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 목표는 조기에 달성됐다. 버켄스탁에 따르면 2017년 2500만 켤레의 신발을 판매했다. 2012년 당시만 해도 1000만 켤레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지만 5년 남짓 만에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매출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도 주목받았다. 명품 브랜드 셀린느를 비롯해 꼴레뜨, 릭 오웬스 등과 공동 작업을 했다. 명품 패션쇼 런웨이에 등장한 버켄스탁 애리조나 모델은 70년 동안 같은 디자인을 유지해온 신발에 단지 털을 입혔을 뿐인데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모든 브랜드의 협업 요청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라이헤르트는 인터뷰에서 “수요가 늘면서 공장 가동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헤르트 CEO는 밀려드는 주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직원을 2000명 이상 늘렸다. 이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도 고객 전화에 응대하기도 한다.

사계절 편하게 신는 샌들

버켄스탁은 인기가 높아졌다고 성급하게 새 모델을 내놓는 대신 다양한 소재에 기능성을 더한 제품들을 추가하고 있다. 실용적인 반부츠를 비롯해 일반 샌들보다 저렴한 40달러짜리 방수 가능 샌들을 내놓는 식이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1700가지의 모델이 있다.

제품의 90%가 샌들로 구성된 브랜드지만 여름에 특화된 신발이 아닌 사계절 비즈니스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버켄스탁 샌들에 어울리는 겨울 양말을 파는 업체가 따로 나올 정도다. 라이헤르트 CEO는 “러시아같이 춥고 날씨가 좋지 않은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며 “버켄스탁은 특정 시즌용 신발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