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롱런' 비결은 경제…의원들도 '벤쿄카이'로 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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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일본리포트 - 일본을 보며 한국을 생각한다
1차 집권 실패 '쓴약'
정권유지 핵심은 '경제' 깨달아…스터디모임서 정책 토론·결정
자민당 '올마이티 파티' 비난에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해 지지
'정·노·사 위원회' 정부가 교통정리
정치안정 이어지며 경제성장 지속
'잃어버린 20년' 단명총리와 대조
1차 집권 실패 '쓴약'
정권유지 핵심은 '경제' 깨달아…스터디모임서 정책 토론·결정
자민당 '올마이티 파티' 비난에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해 지지
'정·노·사 위원회' 정부가 교통정리
정치안정 이어지며 경제성장 지속
'잃어버린 20년' 단명총리와 대조
단명 총리 vs 최장수 총리 - 10년 전과 달라진 도쿄의 일상
2006년 9월부터 2012년 말까지 첫 3년은 세 명의 자민당 출신이, 마지막 3년3개월은 세 명의 민주당 출신이 일본 총리직을 맡았다. 아베 신조 1차 내각을 시작으로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평균 1년1개월씩 재임했다. 이 시기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중국에 추월당했고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국운이 쇠했다는 평을 들었다. 아베 총리는 올 8월에 2차 세계대전 후 최장수 집권 기록을 갈아치운다. 11월이면 최장수 총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자민당 총재가 총선에서 승리해 5년 만에 총리로 복귀하며 내놓은 취임 일성이다. 그는 “일본을 ‘이류국가’로 두지 않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던 그의 호언장담은 빈말이 아니었다. 아베 총리의 재집권 7년째인 일본은 전례 없는 정치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뚜렷한 성취를 이뤄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사학 스캔들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하며 국민의 지지를 다시 확인했다. “아베 정치적 리더십은 80점 이상”
일본을 대표하는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미즈호종합연구소의 야노 가즈히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자가 볼 때 아베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은 80점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리한 개헌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올 8월에 ‘전후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얻는 아베 총리의 성공 비결은 무엇보다 경제다. 객관적인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말 기준 일자리 수는 2012년 말보다 450만 개 늘어난 6713만 개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2.4%로 떨어졌다.
취임 뒤 곧바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들고나온 아베 총리는 기업인들에게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다. 양적완화를 통한 엔저(엔화가치 하락) 유도, 법인세 인하와 파격적인 규제 완화, 확장적 재정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면서 엔고와 각종 규제에 신음하던 기업들도 점차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 법인기업의 경상이익은 2012년 49조6000억엔에서 2018년 83조1000억엔으로 급증했고 수익성이 좋아진 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리며 보답했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일본을 되살린다’는 확실한 목표를 ‘3개의 화살’이라는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해 국민에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공부 모임 ‘벤쿄카이’의 힘
아베 총리에겐 1차 집권(2006년 9월~2007년 8월) 실패가 ‘쓴 약’이 됐다. 만 2년도 안 돼 실각했던 아베 총리는 경제가 핵심이라는 걸 체감했다. 아베 총리는 경제 공부가 부족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2008년 3월 ‘쿨 어스 50곤와카이’라는 벤쿄카이(勉强會)를 꾸렸다. 당시 벤쿄카이 멤버가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시오자키 야스히사 전 후생노동상 등이다.
벤쿄카이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는 ‘공부 모임’을 뜻한다. 통상 한 달에 한 번가량 모여 정해진 순번에 따라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민당의 각종 파벌은 숱한 합종연횡 때도 최소 수개월에 걸친 벤쿄카이를 거쳐 결정한다. 아베 총리는 쇼와정책연구회 등 자민당 각 파벌이 운영 중인 벤쿄카이에도 자주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래 4년을 제외하고 줄곧 집권한 바탕에는 이 같은 학습조직의 저력이 자리잡고 있다. 자민당이 전지전능한 정당이라는 뜻의 ‘올 마이티(all mighty) 파티’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베 정부는 민간 정책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연성도 갖추고 있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아베 총리 취임 직후부터 70여 건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담긴 정책제안 형식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정부와 민간이 벤쿄카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교류하며 정책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게 일본 경제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 안정이 가져다준 선순환 구조
일본에서는 주요 경제 및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로 ‘정·노·사 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국과 달리 ‘정(政)’이 가장 앞쪽에 나오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 주도로 노사 협조를 이끌어내는 시스템을 반영한 결과다. 사회적 갈등도 정부·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 교통정리하는 구조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의 비효율이나 뒤틀림이 적다는 점은 아베 총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사회적 인프라로 꼽힌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퇴임을 앞두고 “경제가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고 답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경제가 다시 뛰기 시작한 데는 정치 안정이 큰 역할을 했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정치 리더십이 강화됐고 정치 안정은 다시 경제 활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총리들이 채 1년도 안 돼 줄줄이 쫓겨나며 극심한 정치 혼란을 겪은 ‘잃어버린 20년’ 시기와는 완전 딴판이다.
도쿄=이심기 정치부장/ 김동욱 특파원 sglee@hankyung.com
2006년 9월부터 2012년 말까지 첫 3년은 세 명의 자민당 출신이, 마지막 3년3개월은 세 명의 민주당 출신이 일본 총리직을 맡았다. 아베 신조 1차 내각을 시작으로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평균 1년1개월씩 재임했다. 이 시기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중국에 추월당했고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국운이 쇠했다는 평을 들었다. 아베 총리는 올 8월에 2차 세계대전 후 최장수 집권 기록을 갈아치운다. 11월이면 최장수 총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자민당 총재가 총선에서 승리해 5년 만에 총리로 복귀하며 내놓은 취임 일성이다. 그는 “일본을 ‘이류국가’로 두지 않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던 그의 호언장담은 빈말이 아니었다. 아베 총리의 재집권 7년째인 일본은 전례 없는 정치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뚜렷한 성취를 이뤄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사학 스캔들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하며 국민의 지지를 다시 확인했다. “아베 정치적 리더십은 80점 이상”
일본을 대표하는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미즈호종합연구소의 야노 가즈히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자가 볼 때 아베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은 80점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리한 개헌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올 8월에 ‘전후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얻는 아베 총리의 성공 비결은 무엇보다 경제다. 객관적인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말 기준 일자리 수는 2012년 말보다 450만 개 늘어난 6713만 개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2.4%로 떨어졌다.
취임 뒤 곧바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들고나온 아베 총리는 기업인들에게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다. 양적완화를 통한 엔저(엔화가치 하락) 유도, 법인세 인하와 파격적인 규제 완화, 확장적 재정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면서 엔고와 각종 규제에 신음하던 기업들도 점차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 법인기업의 경상이익은 2012년 49조6000억엔에서 2018년 83조1000억엔으로 급증했고 수익성이 좋아진 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리며 보답했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일본을 되살린다’는 확실한 목표를 ‘3개의 화살’이라는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해 국민에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공부 모임 ‘벤쿄카이’의 힘
아베 총리에겐 1차 집권(2006년 9월~2007년 8월) 실패가 ‘쓴 약’이 됐다. 만 2년도 안 돼 실각했던 아베 총리는 경제가 핵심이라는 걸 체감했다. 아베 총리는 경제 공부가 부족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2008년 3월 ‘쿨 어스 50곤와카이’라는 벤쿄카이(勉强會)를 꾸렸다. 당시 벤쿄카이 멤버가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시오자키 야스히사 전 후생노동상 등이다.
벤쿄카이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는 ‘공부 모임’을 뜻한다. 통상 한 달에 한 번가량 모여 정해진 순번에 따라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민당의 각종 파벌은 숱한 합종연횡 때도 최소 수개월에 걸친 벤쿄카이를 거쳐 결정한다. 아베 총리는 쇼와정책연구회 등 자민당 각 파벌이 운영 중인 벤쿄카이에도 자주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래 4년을 제외하고 줄곧 집권한 바탕에는 이 같은 학습조직의 저력이 자리잡고 있다. 자민당이 전지전능한 정당이라는 뜻의 ‘올 마이티(all mighty) 파티’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베 정부는 민간 정책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연성도 갖추고 있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아베 총리 취임 직후부터 70여 건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담긴 정책제안 형식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정부와 민간이 벤쿄카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교류하며 정책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게 일본 경제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 안정이 가져다준 선순환 구조
일본에서는 주요 경제 및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로 ‘정·노·사 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국과 달리 ‘정(政)’이 가장 앞쪽에 나오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 주도로 노사 협조를 이끌어내는 시스템을 반영한 결과다. 사회적 갈등도 정부·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 교통정리하는 구조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의 비효율이나 뒤틀림이 적다는 점은 아베 총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사회적 인프라로 꼽힌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퇴임을 앞두고 “경제가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고 답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경제가 다시 뛰기 시작한 데는 정치 안정이 큰 역할을 했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정치 리더십이 강화됐고 정치 안정은 다시 경제 활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총리들이 채 1년도 안 돼 줄줄이 쫓겨나며 극심한 정치 혼란을 겪은 ‘잃어버린 20년’ 시기와는 완전 딴판이다.
도쿄=이심기 정치부장/ 김동욱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