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에필로그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jih@hankyung.com
요즘 한국인들은 일본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1년에 관광객 800만 명이 곳곳의 맛집과 온천을 누비고 다닌다. 값싼 엔화와 양질의 인프라, 서비스를 만끽하고 있다. 정치적 긴장엔 큰 관심이 없다. “과거에 큰 죄를 지은 일본이 우리를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그럴 수 있다. 감정적 거부감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일본이 스스로 어떤 진단을 내놓고 있는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일본 경제인과 학자들은 “아직도 멀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대학가의 창업 열기와 규제개혁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미국 실리콘밸리와는 까마득한 격차가 있다고 토로했다. ‘고용 대박’에 들뜨기보다는 인구 감소와 저축 제로(0) 세대가 늘어나는 것을 걱정했다.
경제 사정이 일시적으로 호전됐다고 일본의 힘을 재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완전히 탈출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하지만 더 젊고 활기찬 국가를 만드는 데 한마음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현 좌표와 능력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2019년이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년이 되는 해임을 강조하고 강력한 적폐청산 의지를 재확인했다. 신년사 상당 부분이 ‘과거’에 할애됐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새해를 일본의 내일을 열어 가는 한 해로 만들 것이며 그 선두에 서겠다”고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한국은 여전히 일본이 남긴 과거의 유산에 매달리고 있지만 일본은 그런 한국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게 분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취재팀은 이번에 일본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얼마나 절치부심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2030년, 2050년을 겨냥한 그랜드 플랜에 3년, 5년 단위의 세부 계획을 촘촘하게 마련해놓고 있었다. 기회와 위기 가운데서도 언제나 위기요인을 먼저 제시한 뒤에 처방을 내놓았다.
바로 이웃에서 이런 국가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타고난 운명이다. 그들이 달리면 우리도 달려야 한다. 신산업이든, 관광이든 모든 분야에서 처절하게 붙어야 한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해 모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그래야 해마다 되새기는 3·1절의 의미도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