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사진)이 24일(현지시간)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급여를 못받아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들에 대해 “대출을 받으면 되지 왜 푸드뱅크에 기대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발언해 ‘구설수’에 휘말렸다. 셧다운으로 고충을 겪는 공무원들이 겪는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측근들 잇단 ‘구설수’

로스 장관은 이날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임금을 못받는 80만명의 근로자 가운데 일부는 음식을 구하기 위해 노숙자 보호소에 가야 할 수도 있다는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에서 대출을 받는 게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장돼 있다”며 “일시해고된 근로자들은 결국 월급을 돌려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대출을 안 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곧바로 로스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는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 또는 ‘아버지에게 돈 달라고 전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빵이 없다’는 농부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한 말에 비유해 로스 장관을 비난한 것이다. 로스 장관은 투자은행 로스차일드 회장을 지낸 갑부로 한 때 재산이 29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돈 많은 인사 중 하나인 로스 장관의 발언은 셧다운 국면에서 논란을 빚은 행정부 인사 발언 중 가장 최근 사례”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셧다운 국면에서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른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최근 일시해고된 공무원들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은 형편이 더 나아진 셈이다. 장차 월급을 다시 돌려받을 것이기 때문에 휴가와 비슷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의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도 봉급을 제때 받지 못한 연방 공무원들에 대해 “약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생활고에 전당포 찾고, 우버 기사 뛰고

미 언론에선 셧다운 장기화로 생활고를 겪는 공무원들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전당포를 찾는 공무원들이 늘었다고 보도했다. 수백달러를 주고 산 담요를 맡기고 50달러를 빌려간 공무원, 돈을 빌리기 위해 어머니의 결혼 반지를 맡긴 공무원, 50인치 고화질 TV를 들고와 200~300달러를 요구했지만 75달러밖에 받아가지 못한 공무원 등의 사례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일시해고를 휴가에 비유해 구설수에 오른 해싯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조차 “경제자문위 공무원 중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우버 운전사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셧다운으로 전체 연방공무원(210만명)의 30%가 넘는 80만명이 급여를 못받고 있다. 이 중 38만 명은 일시 해고 상태다. 42만 명은 필수 업무로 지정돼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NYT는 지난달 22일 셧다운 시작 후 4주간 80만 명의 연방 공무원이 받지 못한 급여가 1인당 평균 5000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연방 공무원들의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1월 첫째 주 1만454건으로 전주의 4760건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미 동부시간 24일 기준 34일째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