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터뷰] '컴퓨터 노벨상' MIT 교수는 왜 가상화폐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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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상' 수상 실비오 미칼리 MIT 교수 인터뷰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700억대 투자 유치
"난제 '블록체인 3가지 딜레마' 해결할 것"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700억대 투자 유치
"난제 '블록체인 3가지 딜레마' 해결할 것"
“현존하는 가상화폐(암호화폐)들은 문제점이 많습니다. 소수 세력이 운영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이 그렇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2~3개 그룹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게 ‘탈중앙화’ 인가요?”
지난 23일 서울 강남N타워에서 만난 실비오 미칼리 MIT(매사추세스공대) 교수(사진)는 현행 블록체인 시스템의 모순점을 정면 비판했다. 실비오 교수는 암호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지난 2012년 ‘컴퓨터과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받은 인물이다.
“수십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에 투자됐어요. 하지만 아직 기술은 미완성입니다. 많은 문제가 터지고 있죠. 바로 ‘블록체인 트릴레마(3중 딜레마)’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은 확장성·탈중앙성·보안성 세가지가 핵심이지만 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알고랜드’를 만들었죠.”
블록체인 트릴레마란 아직 명확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한 난제다. ‘빠른 처리 속도(확장성)’와 ‘권력 분산(탈중앙성)’의 동시 달성이 모순적이라서다.
예컨대 권력의 소수 집중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이 암호화폐 채굴에 참여케 한다면?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거래 체결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참여자들의 합의를 통해 거래를 체결하는 블록체인의 속성 때문. 느린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참여자도 거래 과정에 포함될 확률이 높아져서다.
반면 빠른 거래처리 능력(확장성)을 위해 컴퓨팅 환경이 좋은 참여자에게만 채굴을 맡긴다면 어떨까. 거래처리 능력은 향상되지만 그만큼 소수 참여자들이 독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확장성과 탈중앙성을 모두 만족시키려 보안성을 강제로 낮출 수도 없다. 그야말로 난제다. 실비오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존 블록체인의 구동 방식을 통째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봤다.
“알고랜드는 지금의 블록체인과 다른 개념의 시스템을 만들어 문제를 극복하려 합니다. 이른바 순수지분증명(PPoS·Pure Proof of Stake)이란 방식입니다.”
그가 설계한 알고랜드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채굴에 기여한 사람에게 보상을 주지 않는 게 핵심이다. 일반적으로는 채굴 과정에서 암호를 푸는 데 들어간 컴퓨팅 파워, 전기세 등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보상이 없다면 아무도 암호화폐를 채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알고랜드는 덧셈 수준의 쉬운 합의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채굴에 들어가는 자원이 사실상 없는 셈에 가깝다. 굳이 사용자들에게 보상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 이렇게 하면 합의 과정의 난이도를 쉽게 만든 만큼 보안성이 떨어진다. 알고랜드는 이를 ‘무작위 선출되는 1000명의 위원회’로 해결했다.
“알고랜드는 1밀리초(1000분의 1초)마다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블록을 생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퍼뜨릴 1000명의 위원회를 매번 무작위 선출합니다. 알고랜드 토큰을 보유한 양만큼 위원으로 뽑힐 확률이 높아집니다. 블록 생성이 1000분의 1초마다 이뤄지는 데다 매번 1000명의 위원회 구성이 바뀌기 때문에 공격 당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죠.” 물론 실비오 교수가 설계한 방식도 100% 완벽하진 않다. 무작위로 선출되는 1000명의 위원 중 과반이 알고랜드를 공격하려는 목적이 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단 확률은 매우 낮다.
그가 고안한 방식에 전문가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다수 기관투자자들에게 6200만달러(약 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몇 년간 암호화폐 시장에서 과장하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마치 1990년대의 정보기술(IT) 버블 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IT 버블이 끝난 뒤 어떻게 됐죠? 초창기의 과장이나 허위는 사라지고 오히려 IT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 활용사례, 관심도는 계속 증가해왔습니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상황은 그저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성 정도를 인지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진보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란 거예요.”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암호화폐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란 비판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실비오 교수는 이처럼 암호화폐 기술과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가 설계한 알고랜드는 올해 메인넷(정식 서비스)을 런칭할 계획이다. ‘트릴레마’를 해결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지난 23일 서울 강남N타워에서 만난 실비오 미칼리 MIT(매사추세스공대) 교수(사진)는 현행 블록체인 시스템의 모순점을 정면 비판했다. 실비오 교수는 암호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지난 2012년 ‘컴퓨터과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받은 인물이다.
“수십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에 투자됐어요. 하지만 아직 기술은 미완성입니다. 많은 문제가 터지고 있죠. 바로 ‘블록체인 트릴레마(3중 딜레마)’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은 확장성·탈중앙성·보안성 세가지가 핵심이지만 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알고랜드’를 만들었죠.”
블록체인 트릴레마란 아직 명확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한 난제다. ‘빠른 처리 속도(확장성)’와 ‘권력 분산(탈중앙성)’의 동시 달성이 모순적이라서다.
예컨대 권력의 소수 집중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이 암호화폐 채굴에 참여케 한다면?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거래 체결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참여자들의 합의를 통해 거래를 체결하는 블록체인의 속성 때문. 느린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참여자도 거래 과정에 포함될 확률이 높아져서다.
반면 빠른 거래처리 능력(확장성)을 위해 컴퓨팅 환경이 좋은 참여자에게만 채굴을 맡긴다면 어떨까. 거래처리 능력은 향상되지만 그만큼 소수 참여자들이 독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확장성과 탈중앙성을 모두 만족시키려 보안성을 강제로 낮출 수도 없다. 그야말로 난제다. 실비오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존 블록체인의 구동 방식을 통째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봤다.
“알고랜드는 지금의 블록체인과 다른 개념의 시스템을 만들어 문제를 극복하려 합니다. 이른바 순수지분증명(PPoS·Pure Proof of Stake)이란 방식입니다.”
그가 설계한 알고랜드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채굴에 기여한 사람에게 보상을 주지 않는 게 핵심이다. 일반적으로는 채굴 과정에서 암호를 푸는 데 들어간 컴퓨팅 파워, 전기세 등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보상이 없다면 아무도 암호화폐를 채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알고랜드는 덧셈 수준의 쉬운 합의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채굴에 들어가는 자원이 사실상 없는 셈에 가깝다. 굳이 사용자들에게 보상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 이렇게 하면 합의 과정의 난이도를 쉽게 만든 만큼 보안성이 떨어진다. 알고랜드는 이를 ‘무작위 선출되는 1000명의 위원회’로 해결했다.
“알고랜드는 1밀리초(1000분의 1초)마다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블록을 생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퍼뜨릴 1000명의 위원회를 매번 무작위 선출합니다. 알고랜드 토큰을 보유한 양만큼 위원으로 뽑힐 확률이 높아집니다. 블록 생성이 1000분의 1초마다 이뤄지는 데다 매번 1000명의 위원회 구성이 바뀌기 때문에 공격 당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죠.” 물론 실비오 교수가 설계한 방식도 100% 완벽하진 않다. 무작위로 선출되는 1000명의 위원 중 과반이 알고랜드를 공격하려는 목적이 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단 확률은 매우 낮다.
그가 고안한 방식에 전문가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다수 기관투자자들에게 6200만달러(약 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몇 년간 암호화폐 시장에서 과장하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마치 1990년대의 정보기술(IT) 버블 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IT 버블이 끝난 뒤 어떻게 됐죠? 초창기의 과장이나 허위는 사라지고 오히려 IT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 활용사례, 관심도는 계속 증가해왔습니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상황은 그저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성 정도를 인지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진보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란 거예요.”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암호화폐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란 비판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실비오 교수는 이처럼 암호화폐 기술과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가 설계한 알고랜드는 올해 메인넷(정식 서비스)을 런칭할 계획이다. ‘트릴레마’를 해결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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