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知財權 보호가 국가 경쟁력 높인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으로 표면화된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올해도 강화될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너도나도 트럼프’를 ‘2019년 글로벌 10대 트렌드’의 첫 번째 키워드로 선정한 바 있다.

작년 12월 미·중 정상은 양국 간 무역분쟁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90일간 휴전에 합의한 뒤 협상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미·중 무역분쟁의 본질을 ‘지식재산권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미래 핵심산업 분야의 첨단기술 패권을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중국 내 미국 기업의 지재권 보호 강화와 첨단기술 이전 강제 금지가 미·중 간 통상협상의 핵심 쟁점인데, 미국은 국내법으로도 자국 기업의 첨단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단속하고 있다. 외국인투자 심사제도를 강화해 외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M&A)을 제지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의 장비를 자국 통신망에서 배제하려는 조치에서 보듯이 첨단 통신장비를 통한 국가기밀 및 첨단기술 유출에 대한 경계도 강화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은 지재권 보호를 강화하려는 듯하다. 중국 주요 38개 부처가 협력해 지재권을 침해하는 대상을 ‘신용상실 주체’로 규정하고 이들의 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특허법 등을 개정해 지재권 침해에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려 하는 등 지재권 보호를 위한 구조적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미국과의 무역갈등 및 세계적으로 번지는 중국 기업에 대한 경계를 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산업 고도화를 꾀하는 중국으로서는 지재권 보호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은 1986년 한·미 지재권 양해각서 체결,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통해 오래전 미국과 지재권 관련 통상협상을 타결했다. 이 과정에서 지재권 보호 강화를 위한 국내 법제를 정비했고, 사회적으로도 지재권 보호에 관한 인식이 높아졌다. 그런데 2018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지재권 보호 수준’은 39위로 전년도 44위에 이어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출원인 국적별 특허 출원 수’와 ‘출원인 국적별 특허 등록 수’ 지표 모두 세계 63개국 중 4위를 차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좋은 제품이 시장에 나오자마자 ‘미투(me too)’ 상품이 범람하고,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기술을 손쉽게 베끼거나 탈취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9~2013년 국내 특허침해 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의 중앙값은 약 5900만원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현저히 낮아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지재권을 이용하기보다 우선 지재권을 침해한 뒤 나중에 적발되더라도 이를 통해 얻은 이익으로 배상액을 지급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는 7월 도입 예정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환영할 만하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특허 및 영업비밀을 고의로 침해한 자에게는 지재권자가 입은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책임을 지우게 된다. 이 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용된다면 국내외 기업에 국내 등록된 특허나 한국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탈취해서는 안 된다는 경종을 울려 국내 지재권 보호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최근 제조원가가 싼 해외에서 제조된 특허 침해품이 국내로 수입되는 것처럼 국내 수입자와 해외 공급자 간 협업을 통해 지재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점증하고 있다. 무역위원회는 이런 방식의 지재권 침해 물품 수입자 또는 국내 판매자 등 국내 침해자를 중심으로 제재해왔다. 하지만 수입품의 지재권 침해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침해 물품의 해외 공급자를 대상으로도 반입중지 명령과 같은 제재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무역위원회는 올해부터 침해 물품의 해외 공급자에 대한 조사도 강화할 계획이다.

단단한 금고 속에 보물이 모이듯 지재권 보호를 탄탄히 할수록 더 많은 첨단기술이 국내에서 개발·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기술의 융합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