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부채관리 점검회의를 열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왼쪽부터), 허인 국민은행장, 이대훈 농협은행장,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위원회는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부채관리 점검회의를 열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왼쪽부터), 허인 국민은행장, 이대훈 농협은행장,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5일 주요 은행의 최고경영자(CEO)와 금융업계 협회장들을 만나 가계부채를 점검하는 자리에서 ‘소비자 이익을 위한 은행의 희생’을 주문했다. 최 위원장은 특히 “새 코픽스 도입 이후 가산금리를 부당하게 조정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이 이후 주요 은행장에게 “하실 말씀 부담 느끼지 말고 해달라”고 했지만, 은행장들은 하나같이 “드릴 말씀이 별로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장들은 하지만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출금리에 대한 정부 정책에 따라야겠지만 지나치게 은행 팔목을 비틀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소비자 혜택 갑자기 공개

은행장들 "대출금리 인하 정부 방침 따르겠지만, 팔 너무 비틀면 곤란"
최 위원장은 이날 금융연구원의 분석을 인용해 “새 코픽스 적용에 따른 소비자 혜택이 연간 적게는 1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 이상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22일 대출금리 산정 개선 방안을 발표할 당시 새 코픽스 적용으로 지금보다 금리가 0.27%포인트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 혜택을 볼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새 코픽스 적용으로 최종 대출금리가 얼마나 낮아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데다 새 금리로 갈아타는 대출자 규모를 추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불어 비(非)시장성 자금이 새 코픽스에 감안되면 그만큼 리스크 프리미엄이 올라가 큰 혜택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공정경제 추진 전략회의에서 “대출금리 개편대책은 국민이 체감할 만한 좋은 업적이어서 가계에 많은 효과가 있을 수 있으니 그런 부분이 와 닿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한 뒤 금융위의 태도가 바뀌었다. 금융위는 곧바로 금융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고, 이틀 뒤 열린 가계부채관리 점검회의에서 이 결과를 공개했다.

금융연구원은 우선 지난해 잔액기준 코픽스 대출을 받은 소비자 수를 기준으로 기존 금리보다 0.27%포인트 인하됐을 경우의 이자 절감액을 산출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수치가 1000억원이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은 가계의 절반이 새 코픽스 기반 대출로 갈아탄다고 가정하면 연간 1조원가량의 이자 절감 효과가 나온다. 기업대출(30% 전환 가정 시)까지 포함하면 1조3000억원이 넘는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팔 너무 비틀면 부러진다”

최 위원장은 “이번 대출금리 개편대책이 은행 이익을 축소시킬지 모른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 대책은 은행권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은행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높여 지속 가능한 이익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은행장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장은 “회의 분위기가 썩 유쾌하지 않았는데 다른 은행장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라며 “은행들을 대상으로 한 ‘팔 비틀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장은 “은행들은 지금 죄인이어서…”라고 말을 흐렸다.

은행장들은 최 위원장의 일부 발언을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 위원장이 한 “가산금리를 부당하게 조정하는 등 제도 개선의 취지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대목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새 코픽스가 도입되면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으로 가산금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최 위원장이 이렇게 발언한 것은 정부가 정한 대로 금리를 낮추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 팔을 너무 비틀면 부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권에선 올해 경제성장률 하락과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순익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번 새 코픽스 적용으로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올해 국내 은행의 순이익이 작년 전망치(11조8000억원)보다 2조원가량 감소한 9조8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신(新)코픽스

코픽스(COFIX)는 은행들이 정기 예·적금, 양도성예금증서(CD), 금융채 등 시장에서 조달하는 자금의 비용을 가중평균해 낸 지수. 변동금리 대출의 기준으로 쓰인다. 신코픽스는 기존 코픽스에 요구불예금 등 결제성 자금과 정부·한국은행 차입금 등을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강경민/김순신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