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에 20조원이 넘는 돈을 쓸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역대 최대 실적으로 보유 현금이 늘어난 데다 국민연금 헤지펀드 등의 배당 확대 압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에 회사 내 임직원은 물론 일부 장기 투자 성향 주주들까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한풀 꺾인 시점에서 배당을 늘리기보다는 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나 인수합병(M&A)에 보유 현금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높은 실적을 올린 회사가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은 주식회사 시스템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지나친 주주환원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엄청난 돈을 벌면서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에 돈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주주환원 확대가 외압에 의한 것이라면 이 역시 문제일 수 있다. 실제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확대에는 국민연금이나 헤지펀드 압력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결국은 ‘현재’와 ‘미래’ 중 어디에 집중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당장 배당을 늘리면 주주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회사의 장기 성장성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논란은 우리 사회 전체에 유사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현 정부 정책 중 상당수가 나라의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당장 ‘현재’의 갈등을 덮기에 급급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편만 해도 그렇다. 미래 세대가 져야 할 부담에는 큰 관심이 없고 가입자 반발을 의식해 ‘덜 내고 더 받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모습이다. 원격의료나 카풀 문제도 당장 이해관계자들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래 산업 육성을 포기하다시피 한 상태다. 탈(脫)원전도 마찬가지다. 공약 이행이라는 당장의 문제에 매달려 미래 전기요금 인상이나 관련 산업 붕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확대, 일자리 안정기금 지원 확대 등 각종 선심성 복지와 정책 누수에 따른 지원금에 들어가는 돈은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뻔하다.

모두 ‘지금 당장’ 유권자나 이익집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래 납세자들의 부담이나 국가의 장기 재정 안정, 미래 산업 발전을 외면한 정책들이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앞세워 삼성전자 등 대기업 배당 확대를 압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와 미래는 모두 소중하다. 다만 현재에 너무 집착해 곶감을 다 빼먹다 보면 나중에는 먹을 게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 혼돈에 빠진 베네수엘라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