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명문 와세다대 교직원들은 특이한 명함(사진)을 갖고 다닌다. 겉면엔 여느 명함처럼 이름, 직함, 연락처가 적혀 있지만 안쪽엔 “미래를 향해 날갯짓하는 학생에게 지원해달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 와세다대가 지난해 졸업 동문을 대상으로 재학생에게 월 1000엔(약 1만원)씩 후원하는 소액기부사업을 시작한 뒤 교직원 명함을 통한 홍보에 나선 것이다.

이 사업의 원조 격은 다름 아닌 고려대다. 고려대는 2015년 5월부터 이와 비슷한 동문 소액기부 사업인 ‘KU 프라이드 클럽’을 운영해왔다. “고려대의 기부 모델이 일본에까지 수출된 것”(유병현 고려대 기금기획본부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KU 프라이드 클럽은 졸업생과 학교 인근 상인 등을 대상으로 월 1만원씩 기부를 받아 형편이 어려운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18일까지 총 4845명이 기부에 참여해 56억원이 모였다. 학교 측은 이를 활용해 ‘KUPC 생활비장학금’ ‘글로벌희망장학금(교환학생 체류비 지원)’ 등을 운영 중이다. 생활비장학금과 글로벌희망장학금의 혜택을 받은 재학생만 각각 1506명과 148명에 달한다. 작년 11월부터는 학생들이 학생식당에서 저렴한 가격에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마음든든아침사업’도 시작했다.

고려대가 4년 전 KU 프라이드 클럽 사업을 추진한 건 기부금 총액을 늘리기 위한 목적보다 졸업생이 소액 기부로 학교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도록 해보자는 취지가 더욱 컸다는 설명이다. 유 본부장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도 졸업한 지 오래되면 학교를 멀게 느낀다”며 “작은 기부에서부터 큰 기부가 시작된다는 생각에서 제도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KU 프라이드 클럽은 수혜자는 물론이고 기부자들 사이에서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월 2~3잔 커피값을 내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카카오톡 등으로 재학생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기부에 참여하고 있는 직장인 신기훈 씨는 “팀원들 커피 한 번 사줄 돈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서 가입했다”며 “최근 1000원 조식 사업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감사하다는 댓글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기금의 혜택을 받은 재학생들도 “선배와 학교로부터 받은 은혜를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서 꼭 되갚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생활비장학금을 받은 재학생 김모씨는 “월 20만원의 지원이 가난함에 굴복해가던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나중에 취업해서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프라이드 클럽에 가입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학교 인근 상인을 비롯한 일반인 참여자도 적지 않다. 고려대 안암캠퍼스 인근 37개 식당이 KU 프라이드 클럽에 가입해 월 1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일반인 가입 비중은 전체 가입자의 10%가량으로 추산된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