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미동맹 흔드는 방위비 협상
한·미 양국은 지난해 3월부터 연말까지, 올해부터 적용할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을 위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10차례나 벌였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한국의 마지노선인 1조원과 미국의 마지노선인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의 격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와대는 1조원 초과가 불가피하다는 외교부와 국방부의 의견에 “1조원을 넘길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1조원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300억원이라면 그리 큰 차이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스스로 두 배 인상을 언급했던 것을 감안하면 1조1300억원은 수용할 만한 타협점이었다. 15억달러를 10억달러까지 끌어내린 우리 실무협상팀의 협상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비용, 군수 지원비로 사용된다. 국방백서에도 나와 있듯이 90% 이상이 우리 경제로 환류되는 돈이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수조원을 쓰는 판에 1300억원은 일자리 예산의 일부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돈이다.

이에 대해 “1조원은 국민 정서의 마지노선”이라는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1조원도 지난해 9602억원에서 4.1%가 오른 수치이니 더 이상은 ‘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근거 없는 변명처럼 들린다. 올해 국방예산도 지난해보다 8% 이상 늘었다. 더구나 사회 곳곳에서 단지 1300억원이 문제라면 국민모금으로 충당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궁금할 뿐이다.

그렇다면 1조원을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속내를 밝히지 않기 때문에 이 질문의 해답은, 토목공학에서 사용되는 삼각측량법처럼 최근의 몇 가지 사건으로부터 유추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많은 나라를 방문해 때로는 타박에 가까운 대응에도 굴하지 않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설득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에 반환받겠다는 의지도 거듭 천명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발표된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5년간 270조7000억원 규모로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리는데, 가장 큰 몫은 자주국방과 전시작전권 전환 기반을 닦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다.

지난 15일 발간된 ‘2018 국방백서’에서는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동맹이란 원래 공동의 적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적 삭제는 바로 동맹의 가치를 그만큼 낮게 본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일본과 ‘북핵·미사일 위협’에 협력한다는 내용도 이번 국방백서에서는 빠졌다.

이런 일련의 사실이 공통되게 가리키는 것은 “우리민족끼리 평화를 만들어 가는 마당에 전통적 안보동맹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렇게 보면 초계기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 전반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강경 일변도로 대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강경 자세도 이해가 된다. 방위비 분담금은 한·미 동맹의 척도로 여겨져왔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재임 당시 “적절한 방위비 분담을 할 용의가 있느냐가 미군의 한국 주둔을 원하고 존중하느냐에 대한 확고한 징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혹시라도 이제 주적이 없으니 설사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평화는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지만 평화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일이 틀어질 경우, 우리 스스로 북한의 위협을 떨쳐낼 수 있을까. 미국이 제시한 10억달러는 국민 1인당 2만원, 1300억원은 2000원쯤에 불과하다.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는 이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보험에 1인당 2000원을 더 사용하는 데 인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어떤 거래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을 제거해 평화로 가는 길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